헐리우드를 뒤집고 낯설게 하다
헐리우드 배우를 이용한 CM크리에이티브의 성공 전략
일본 CM은 우리나라 CM에 비해 유독 헐리우드 배우들이 자주 출연하는 편이다. 물론 버블경제 이후 긴 불황을 겪고 있는 현재 일본 기업들이 광고비용을 삭감하기 시작하면서 헐리우드 배우들의 기용이 예전처럼 빈번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브랜드의 타겟층에 맞는 한국의 한류 스타들이 광고에서 자주 눈에 띄는 것이 최근의 상황이다. 하지만 한류스타의 경우, 예전 할리우드 스타들이 그러했던 것처럼 멋있고 예쁜 이미지 일색으로 등장하는 광고들을 답습하는 경우가 많다. 단순히 브랜드에 스타의 이미지를 접목시켜 소비시키는 류의 광고가 대다수이다. 그렇다면 할리우드 스타들이 등장하는 광고가 최근 눈에 띄게 변화된 점, 그리고 차별화된 새로운 경향은 어떤 것이 있을까. 최근 헐리우드 배우들이 등장하는 CM의 경향을 살펴보면 코믹, 의미불명, 엽기 등으로 해석할 수 있을 만큼 일본CM에서만 그 배우들의 또 다른 매력을 볼 수 있을 정도로 독특한 색깔과 크리에이티브를 가진 광고들이 많이 눈에 띈다. 왜, 그리고 굳이, 하필 이 배우가 이런 광고들을 찍었을까 고개를 갸우뚱할만큼 의아할 정도의 광고들이 대다수이다. 이러한 최근의 독특한 경향의 헐리웃 배우들의 CM에 큰 스타트를 끊었다고 할 수 있는 것은 역시 산토리의 ‘보스’ 캔커피CM에 등장하는 토미 리 존스일 것이다. (전문가칼럼 : 캔커피 안에 담긴 달콤쌉싸름한 웃음 - SUNTORY BOSS캔커피 캠페인 CM 참조) 벌써 40여편 가까이 제작된 ‘우주인 존스’라는 타이틀의 이 캠페인은 토미 리 존스라는 헐리웃 배우의 우직하고 카리스마있는 이미지를 지구를 조사하는 엉뚱한 외계인으로 코믹하게 뒤집은 설정으로 꾸준히 사랑받고 있다. 2011년 9월 20일에 온에어된 최근 CM에서는 산 속의 좁은 길들을 여행하면 하이쿠(일본 시문학의 일종)를 잘 쓸 수 있다는 설정으로 시작하여, 지진피해로 상처받은 토호쿠지방의 아름다운 가을경관을 배경으로 하이쿠의 창작을 재미있게 표현해냈다. CM종합연구소의 10월조사에서 이 CM은 전체호감도 6위에 랭크되었다. 특히 보스는 제품의 이미지대로 남성층의 지지가 절대적인 CM중 하나이다. 토미 리 존스의 이미지가 ‘보스’ 캔커피의 이미지를 새롭게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산토리가 토미 리 존스에게 거는 기대가 계속 클 것으로 보인다. 최근 새해를 맞이하여 새롭게 제작한 이 CM은 처음 보는 사람들은 과연 이게 캔커피와 무슨 연관성이 있으며, 굳이 모델이 토미 리 존스가 아니어도 될 CM처럼 보일지도 모른다. 이런 CM이 제작된 이유를 간단히 한마디로 설명하자면 이런 크리에이티브가 현재 일본 히트 광고의 트렌드이기 때문이다. 그럼 여기서 CM종합연구소의 조사에서 1위를 수년 연속 고수하고 있는 일본 CM의 절대강자, ‘소프트뱅크’의 최근 CM을 살펴보도록 하자. (전문가칼럼 : 예상외의 가족, 일본 모바일 광고계를 점령하다 참조) 보스CM과 마찬가지로 갑자기 우주가 등장한다. 일본의 우주개발에 대한 법개정과 정책, 발표 등이 활발이 전개되고 있는 시점에서 그러한 분위기와 현실을 반영한 크리에이티브라고 생각하기엔 이전 캠페인들과 비교하면 더욱더(이전 캠페인들도 늘 그러했지만) 갑작스럽고 개연성이 존재하지 않는다. 논리적으로 생각하자면 그렇단 말이다. CM에서 의미나 개연성을 찾는 것은 사실 이제 무의미하다. 이런 알 수 없는 광고, 하지만 묘한 매력을 가진 광고를 탄생시킨 장본인은 일본 최고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손꼽히는 ‘신가타’의 ‘사사키 히로시’(佐々木宏)씨이다. 그는 위에 언급한 보스와 소프트뱅크, 두 빅히트 CM을 탄생시킨 크리에이터이자, 지난 수년간 일본의 모든 CM 크리에이터들 중 광고호감도 부문(CM종합연구소 조사)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해왔다. 그가 덴츠 시절부터 참여해왔던 대부분의 캠페인들은 아직도 회자될 정도로 교과서적이면서 늘 독창적이었다. 그리고 여기에 그의 의미불명의 신작이 또다시 등장했다. 한번쯤은 들어봤을만한 일본의 국민만화 ‘도라에몽’을 컨셉으로 제작된 도요타의 그룹이미지 CM이다. 작년말부터 기무라 타쿠야와 기타노 다케시를 필두로 한 도요타의 이미지업CM들이 온에어되기 시작했다 그 후속작으로 제작된 도라에몽의 20년 후 이야기를 꾸민 이 CM에서 놀라운 점은 바로 도라에몽이 레옹으로 유명한 ‘장 르노’라는 점이다. 11월에 온에어된 이후 11회라는 다소 적은 방영횟수(물론 30초CM임)에도 불구하고 이 CM은 호감도 8위에 랭크된다. 그리고 12월에 온에어된 후속편은 59회로 방영횟수를 늘리며 소프트뱅크CM을 제치고 호감도 1위에 랭크된다. 내용은 간단하다. 늘 주변의 돈많은 친구, 힘센 친구에게 당하던 주인공 노비타가 자신의 자동차를 갖기 위해 고구분투하는 내용이다. 말 그대로 황당한 설정이다. 문득 현대자동차나 BMW, 벤츠같은 회사에서 이런 그룹이미지CM을 만들 수 있을까하는 의문이 든다. 어찌보면 일본CM만이 가지는 독특한 영역, 지극히 로컬적인 성향의 광고이기 때문에 가능할 것이다. 아마 장 르노가 이렇게 망가지면서 자동차CM에 나오는 것도 일본CM에서나 볼 수 있는 상황일 것이다. 이런 그가 프랑스로 돌아가 푸조광고에서 선글라스를 끼고 멋지게 드라이브를 하는 편이 더 어울릴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이에 뒤지지 않을 만큼 코믹한 설정으로 눈길을 끄는 또 하나의 CM이 있다. 도요타의 자회사이면서 경자동차 전문업체인 다이하츠의 신차 ‘미라e:S’의 CM이 바로 그것이다. 내용은 선전부장과 선전부 직원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등장하여 1리터 30km저연비와 저렴한 가격을 장점으로 내세우며 CM에 상품만을 등장시켜 승부하겠다는 의욕을 불태운다. 하지만 스탭들과 의사소통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는지(물론 절대 그럴 일은 없겠지만) 이미 광고모델로 브루스 윌리스가 제트비행기로 일본에 오고 있다는 설정의 런칭CM과 어쩔수 없이 광고에 출연하게 된 브루스 윌리스가 상품의 이름을 엉망으로 말하면서 완고해보이는 선전부장이 화를 내는 코믹한 상황을 그려내고 있다. 이 두 편의 신차 광고 캠페인은 9월 한달동안 런칭CM은 방영횟수 554회(종합 5위), 상품명을 잘못 말하는 두번째편은 717회(종합2위)의 다소 공격적인 광고를 집행하므로써, 호감도 부분에서 9위와 5위를 획득하며 비교적 효과적인 런칭 캠페인을 전개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 예전에도 상품명을 코믹하게 바꿔말하면서 발생하는 상황을 그려내며 브랜드를 각인시키는 광고들은 많이 있어왔다. 다이와 하우스의 코믹한 CM들의 시발점이되기도 했던 이 광고는 일본의 안성기라 불리는 ‘야쿠쇼 코지’라는 국민적 배우가 나레이션 녹음실에서 온갖 폼을 잡다가 ‘다이와 하우스’라는 브랜드를 ‘다이와 하우츄’로 발음하면서 발생하는 코믹한 상황을 그리고 있다. 이 광고는 재미있는 컨셉도 좋지만, 기획단계부터 교묘하고 영리하게 계산된 CM중 하나로 볼 수 있다. 일본민간방송연맹의 방송기준 제 15장 광고의 표현 123조를 살펴보면 ‘표현수단으로써 한 광고에 회사명, 상품명, 캐치프레이즈등의 특정 상품정보를 반복하여 나열하는 것을 피한다.’라고 명기되어있다. 횟수나 시간같은 제한은 명확히 명기되어있지 않지만 그런만큼 기준자체가 주관적으로 평가, 적용될 가능성이 높은 기준 중 하나이다. 위에서 본 다이와 하우스의 경우, 설정 자체로 다이와 하우스의 브랜드명을 수차례 반복하면서도 위화감이 들지 않게 함과 동시에 재미있게 희화화함으로써 의도적인 반복으로 인한 소비자들의 반감을 불러일으키지 않았다. 그러면서 브랜드를 확실히 각인시켰음은 두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이번 다이하츠의 ‘미라e:S’의 광고도 이런 공식들을 교묘하게 계산하여 위화감없이 전달한다. 특히 세번째 CM을 보면 저연비, 낮은 가격을 반복하면서도 위화감없이, 그리고 재미있게 표현하고 있다. 선전부 직원들은 이 메세지를 눈에 띄게 전달해주길 원하고 스탭들은 말도 안되는 의상으로 그 메세지를 전달한다는 코믹한 내용의 이 CM은 어찌보면 실제 광고주에게도 소비자에게도 만족스러운 광고일 것이다. 불필요한 정보의 과잉도, 재미의 반감도 없이 명확히 메세지가 전달되고 기억에 남는 CM의 전형적인 예이기 때문이다. 이 CM은 12월 호감도 3위에 랭크되며 신차 캠페인을 꾸준히 이어나가고 있다. 위에 거론한 CM들은 아직 캠페인이 진행중인 CM들이다. 그리고 성공적인 성과들을 보여주는 CM사례이기도 하다. CM종합연구소 연구 결과에 따르며 최근 6년간 호감도를 가장 높게 받는 CM은 대부분 <유명한 모델>이 등장하고 거기에 <춤>과 <음악>, 혹은 <드라마>를 가미한 <유머러스>한 광고라는 공식이 나왔다. 위 광고들을 살펴보면 모두 이 공식에 충실하다. 거기에 가장 중요한 것은 단순 유머가 아닌 예상을 뒤엎는 유머와 내러티브일 것이다. 어찌보면 다소 일본적인, 다소 국한된 크리에이티브로 비춰질지도 모르겠다. 분명 저러한 공식이 적용되는 것은 유명모델들이 CM에 자주 등장하는 한국이나 일본 등의 국한된 국가에서 적용되는 공식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내가 본 일본CM의 강점은 위에 이야기한 크리에이티브 공식이외에도 다양한 크리에이티브들이 폭넓게 분포되어 있다는 것이다. 하나의 브랜드에 가벼운 유머광고와 진지한 이미지 광고가 공존하고, 하나의 캠페인을 몇년간 지속하며 브랜드와 소비자의 신뢰를 튼튼하게 구축해나가고, CM의 근저에 소비자를 생각하는 의식이 깔려있다는 점은 일본 광고가 가진 가장 큰 강점 중 하나이다. 영화당 수십, 수백억의 개런티를 받는 헐리웃 스타들이 굳이 일본에 와서 이런 어이없는 광고들에 선뜻 출연하는 것은 아마도 일본CM만이 가진 매력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문득 요새 CM이나 캠페인에 자주 등장하는 한류스타들을 보면 자랑스러우면서도 한편으로는 아쉬운 느낌이 든다. 한류스타의 광고에는 치고 빠지기식의 크리에이티브들이 난무하기 때문이다. 말 그대로 스타의 이미지에 기대어 이미지 소비식의 단발적이고 천편일률적 광고들이 대부분이다. 예전에 대다수 헐리웃 스타들의 광고(예를 들면 조지 클루니가 나왔던 혼다광고)들도 그렇게 멋지고 예쁜 것들이 넘쳐났었다. 하지만 모든 이미지 콘텐츠들은 쉽게 질리고 쉽게 잊혀진다. 조지 클루니를 담아내던 렌즈에 배용준이 들어왔고, 브래드 피트가 미소짓던 스튜디오에 장근석이 들어왔다. 일본에서 한류스타가 헐리우드 배우를 제치고 이긴 것일까. 그저 시대의 흐름, 시장의 상황에 의해 자리가 교체되었을 뿐이다. 내러티브나 친근함이 없는 콘텐츠, 특히 매우 빠르게 변화되는 광고 시장에서 모델이란 풍전등화와도 같다. 하지만 충성도가 높은 일본인들에게 있어서 모델은 생각보다 중요한 요소이다. 광고주도 모델에 있어서는 크리에이티브 이상으로 민감하고 신중하게 생각한다. 그리고 그런 일본인들에게 토미 리 존스나 브루스 윌리스, 장 르노를 더 이상 멋진 액션스타가 아니게 만든 광고들이 있다. 모델의 호감도에는 맹점이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면 조지 클루니의 중후함은 혼다 자동차와도 잘 어울림과 동시에 그 매력만으로도 충분히 호감을 가지게 된다. 그가 커피 광고에 등장한다면 그의 깊은 미소와 편안함이 어울린 그 제품에 호감을 가질지도 모른다. 여기서 잠시 헷갈린다. 아까 조지 클루니가 타고 있던 차가 뭐였지? 조지 클루니의 매력은 좋았고 그와 함께 좋아보였던 제품들은 기억 속에서 점점 잊혀진다. 그저 조지 클루니의 영상 화보집, 즉 CM이 멋졌을 뿐이다. 모델이 가진 매력을 제품에 이입시키고 동일화시키려는 CM은 가장 빠르고 효율적이지만 모델CM의 범람은 결국 모델에 브랜드를 잠식시키고 만다. 현대인들은 이미지의 범람 속에서 동일한 이미지 n에 플러스a를 기대한다. 그 차이를 소비하게 만드는 것이 광고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TV에서 쏟아지는 광고들을 보고나면 아가사 크리스티의 소설‘그리고 아무도 없었다’나 코엔형제의 영화 ‘그 남자는 거기 없었다’의 타이틀이 우스갯소리처럼 떠오른다. 모델은 있고 브랜드가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이제는 모델도 브랜드도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느껴진다. 이 둘 중에 굳이 하나를 남긴다면 당연히 브랜드를 남겨야 할테고, 굳이 둘을 모두 남기며 시너지를 내면서 이끌어가야 한다면 뭔가 특별한 그 무언가, 그리고 익숙하지 않았던 그 어떤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 문득 러시아 형식주의자들이 이야기했던 ‘낯설게 하기’ 라는 단어가 생각난다. 위에서 보여줬던 익숙했던 그들, 헐리우드 배우들이 낯설어지는 순간들이 어떤 결과로 이어졌는지 다시 한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