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방송을 타고 있는 LG의 기업광고는 두 가지 측면에서 사람들의
시선을 끌고 있다. 우선 ‘서양 명화 패러디’라는
기법을 통해서 익숙한 몇 개의 패턴으로 반복되던 광고계에 신선함을 가져다 준 것이 그 하나이며, 표절의혹에
휩싸이게 되면서 호사가들의 입방아에 오르내리게 된 것이 다른 하나이다.
필자는 이 광고를 처음 접했을 때 그 신선한 소구방식에 반가움을 금할 길 없었으나 이윽고 들려온 표절 시비에
안타까움을 금할 길이 없었다. 그 안타까움은 다른 아닌 표절시비에 뛰어든 우리나라 광고인들에 대한 안타까움이기도
했으며, 우리나라 광고문화에 대한 안타까움이기도 했다. 이 글은
표절과 패러디에 대한 나름의 기준을 제시하고 좀 더 생산적이고 발전적인 측면의 2차 담론이 형성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작성되었다.
우선 표절과 패러디에 대한 사전적 정의를 살펴보는 고전적인 방식으로 글을 시작해보고자 한다. 물론 사전에서
나오는 정의 역시 현재적인 의미를 다 반영할 수는 없지만 이 글의 출발점으로 삼고자 하는 데는 큰 무리가
없으리라. 우선 포털싸이트인 N사를 통해 살펴본 표절과 패러디에 대한 사전적 정의는 다음과 같다.
표절 : 시나 글, 노래 따위를 지을
때에 남의 작품의 일부를 몰래 따다 씀 패러디 : 특정 작품의
소재나 작가의 문체를 흉내 내어 익살스럽게 표현하는 수법. 또는 그런 작품.
위의 사전적 의미를 크리에이티브 측면에서 이야기해보자면 ‘표절’은 다른 사람이
잘 알지 못할 것 같은 광고를 몰래 자기가 창작한 것인 마냥 베껴쓰는 것을 말하고, 패러디란 누구나 다
알 수 있을 것 같은 작품이나 작가의 스타일을 흉내내서 새로운 의미를 만들어내는 것을 말한다. 이해하기
쉽게 이야기하자면 ‘표절’이란 대중에게 알려지지 않은 작품을 몰래 인용한 것이라면, ‘패러디’란
대중에게 널리 알려져 있는 것을 공공연히 인용하는 것이다.
얼마 전 모 대학의 교수가 자신의 시집에 제자의 시를 몰래 실은 것이나 또 다른 대학의
총장이 제자의 논문 일부를 표기도 없이 그대로 인용한 것이 전형적인 표절의 예라면 2006년 최고의 인기를
얻었던 광고 중 하나인 ‘돼지바’ 광고야 말로 전형적인 ‘패러디’인 것이다.
‘표절’과 ‘패러디’ 에 대한 기준이 어느 정도 섰다면 본격적으로
논란이 되고 있는 광고들을 살펴보기로 하자.
<고흐의
밤의 카페테라스>
<미켈란젤로의
아담의 창조>
좌측의 광고들은 스웨덴의 크레인 회사인 ‘히아브’社의 광고들이고 우측의
광고들은 최근 방영되고 있는 LG의 기업광고들이다. 위의 두 광고는 한눈에 보기에도 서로서로 닮아있다.
당연하다. 같은 명화를 패러디 했으니 닮아있을 수 밖에. 문제는 ‘히아브’社의 아이디어를 한국의 광고대행사가
표절했느냐 아니냐의 문제로 넘어간다.
‘히아브’社의 광고를 이전에 본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LG의 광고를 보고
‘표절’이라는 생각을 당연히 해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런 의문을 가질 수 있다.
동일한 작품을 원본으로 삼아 패러디를 했다고 해서 표절이라는 주홍글씨를
새겨버린다면 저 유명한 ‘천지창조’를 패러디한 광고는 더 이상 지구상에 나올 수 없다는 이야기인가?
그리고 ‘히아브’는 도대체 얼마의 돈을 지불했기에 저 걸작들에 대한 독점적인 이용권을 가지고 있단 말인가?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유럽에서는 이렇게 명화를 패러디하는 광고가 일반적인 기법으로 인식되고 있으며 다양한
사례를 찾아볼 수 있다. 하나의 작은 장르로 통용되고 있으며, 크리에이티브적인 측면에서 어떤
작품을 고르느냐보다 동일한 명화에서 어느 회사가 더 자사의 상품을 어필할 수 있는 아이디어를 찾아내느냐에
무게가 더 실린다.
문제는 눈에 보이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것이다. 표절과 패러디의 구분에서 혼돈이 오는 이유는 다름아니라
서로 표현이 닮아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그 닮음이란 ‘표현’ 측면에서 닮아있는 것이지 ‘내용’ 측면에서
닮아있는 것은 아니다. 최근 방영된 어느 이통사의 광고는 ‘표현’이 닮아있지만 ‘내용’이 전혀 다른 경우를
잘 보여주고 있다. ‘사랑해’라는 동일한 ‘말(표현)’ 하는 사람들의 ‘속마음(내용)’은 얼마나 다양하던가.
▶ ‘모나리자’ 패러디 광고
위의 예는 저 유명한 ‘모나리자’와
이를 패러디한 외국 광고들의 모음이다. 동일한 작품을 패러디했기에 그 ‘표현’은 당연히 서로 닮아있지만
‘내용’은 전혀 다르다. 이브생로랑은 고혹적인 이미지를 전달하기 위해서, 후지카메라는 ‘후지’라는 발음에서
연상되는 ‘미소’를 떠올리게 하기 위해서 ‘모나리자’를 이용하고 있기 때문에 표절과는 거리가 멀다.
만약 굴삭기나 크레인을 제조하는 중공업 제조업체에서 히아브와 동일한 방식으로 천지창조를 패러디했다면 그건
표절이 명백하다. 패러디한 작품에서 새로운 아이디어를 찾아볼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LG의 광고는 전혀
다른 의미를 지닌다. ‘천지창조’의 예에서는 신과 인간의 사이에
커뮤니케이션의 도구인 휴대전화기가 삽입되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신이 인간에게 전해 준 도구라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하지만 ‘히아브’의
경우는 신이 인간에게 준 도구라는 의미가 아니라 인간의 손만큼 정밀하면서도 전통있는 제품이라는
의미를 전달하고자 한다. ‘밤의 테라스’에서도 히아브는 자사의 크레인이 얼마나 대중과 친숙하고
전통이 있는가의 의미를 전달하고 있지만 LG의 광고는 아름다운 테라스의 풍경을 더 빛내준다는 의미를 전달하고
있다.
진짜 표절은 아래와 같이 표현하려는 의미와 방식을 동일한 제품 군에서
그대로 볼 수 있는경우이다. 아래와 같은 경우엔 광고 제작자들이 아무리 변명을 해도 표절의 의혹에서 벗어나긴
힘들다.
나는 개인적으로 이번 LG의 기업광고를 두 가지 측면에서 무척이나 좋아한다.
첫째, 앞에서도 잠깐 언급했듯이 우리나라의 높아진 대중문화 수준을 반영해주기 때문이다. 물론 이 같이 명화
몇 점을 이용했다고 해서 대중문화의 수준이 높아졌다고 말할 수 있냐고 반문하는 사람도 있을 터이지만 분명히
우리의 대중문화 수준이 높아진 하나의 척도로 간주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두 번째로는 내가 지금껏 보아왔던 어떤 명화 패러디 광고보다 훨씬 크리에이티브의 완성도가 높다는 점이다.
최근 LG라는 브랜드가 추구하고 있는 ‘ART’라는 컨셉을 잘 살리면서도
‘생활 속의 LG’라는 핵심 메시지 역시 잘 표현하고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이런 세계적으로
유명한 작품들을 이용한 광고를 전개하면서 진정한 ‘글로벌 리더’로 거듭나고자 하는 LG의 마음가짐 또한
잘 보인다. 아래의 통계자료를 통해서 이에 대해서 좀 더 이야기해보기로 하자.
<전체>
전 항목에서 4.0 정도의 높은 점수를 받고 있는 이 광고는 특히 1.광고주목도와
4.광고독창성에서 높은 점수를 받고 있다. 아무래도 눈에 익숙한 명화들을 등장시키면서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고 있으며 그런 명화들 속에 LG의 제품들을 등장시키는 새로운 소구방식으로 신선하다라는 느낌을
주고 있는 것이다.
광고인 혹은 준광고인보다 일반인들에게 더 높은 점수를 받은 것도 이러한 익숙치 않은 소구방식과 관련성이
있어보인다. 또한 아래 그래프에서처럼 남성보다 여성에게서 보다 높은 점수를 받고 있는 것은 아무래도 예술,
특히 서양회화 쪽에 관심이 많은 여성들에게 이 광고가 공감대를 얻고 있기 때문이다. 5.제품구매도 측면에서
가장 낮은 점수를 받고 있는데 이는 기업광고가 지니는 어쩔 수 없는 한계이기도 하다. 오히려 기존의 이미지중심적이고
회사에 대한 구체적인 정보가 결여된 기업광고와는 달리 이렇게 구체적인 제품을 기업광고 속에 등장시킬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매우 신선하게 다가온다.
<여자>
이왕 이야기가 나온 김에 ‘창의성’에 대해서 잠시 언급하고 글을 매조지하기로
하겠다. LG광고를 둘러싼 이러한 논쟁을 불러일으킨 것도 ‘창의성’에 대한 광고인들의 순결성과 고집에서
연유한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 ‘창의성’은 말그대로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능력’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패러디나 꼴라주와 같은 포스트모던의 기법들은 여전히 수준 낮고 창의력이 부족한 방식으로 인식되고 있을 뿐이다.
하지만 21세기 후반을 빛낸 예술인들의 작품은 우리가 알고 있는 이러한 창의성의 개념과는 거리가 멀다.
워홀, 뒤상, 리히텐슈타인, 백남준과 같은 예술인들의 작업은 모두 완전히 새로운 개념을 창조하는데 목표를
두는 것이 아니라 ‘익숙한 것’을 ‘낯설게 보여주기’였던 것이다.
이러한 포스트모던의 기법이야말로 인터넷상에서 텍스트가 넘쳐나고 어느 것이 원본이고 어느 것이 복제본인지
조차 알 수 없는 세상 속에서 진정한 창의력을 표현하는 방식이 아닐까? ‘태양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라는
세익스피어의 말을 다시 한번 곰곰이 생각해보자.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능력뿐만 아니라 기존의 것에서 새로운 의미를
찾아내는 능력 역시 창의력의 범주에 들어가야 하며 이번 논쟁을 계기로 이러한 광고소구방식이
보다 적극적이고 광범위하게 이용되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시삽 : Toru(고려대학교)
* 위 심화평가분석 리포트를 개인블로그나 사이트에 게재하실경우 반드시 출처(tvcf.co.kr)와 시삽을 명확하게 밝혀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