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매체기획 전문가답게 접점(接點)이라는 문제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다. 접점이란 혼자서는 만들어낼 수 없으며 무엇과 무엇이 만나고 부딪히는 순간에 형성되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래서 그가 생각하는 광고 창의성의 개념은 ‘시대의 트렌드와 접점 만들기’이다. 아무리 메시지가 훌륭하더라도 그것이 동시대의 보편적 정서와 맞닥뜨리지 못한다면 대답 없는 메아리에 불과하다는 것이 그가 생각하는 광고 창의성의 핵심일 터이다.
기술 발달에 따라 매체의 영역은 한없이 확장되어 왔다. 그가 매체국에서 일하던 초년병 시절에는 4대 매체 위주로 매체 기획을 했으나, 그 사이 우리나라 매체 환경도 눈부시게 발전하여 이제 바야흐로 구텐베르크 은하계의 르네상스 시대가 열린 것 같다. 이제는 발 닿는 곳마다 눈이 가는 곳마다 이루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로 매체의 가짓수와 범위가 늘어났다. 현대의 미디어 철학에서는 사람의 몸에서 위성 DMB에 이르기까지 우리가 만나는 모든 접점을 매체로 보며 거기에 스며있는 피상성(皮相性)을 예찬한다. 이런 상황에서 그는 미디어와 창의성의 문제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 제가 찾아보니까 ATL이나 BTL같은 말은 미디어 연구자들 사이에서 공인된 학술 용어가 아니라 광고업계에서 만들어낸 신조어에 불과하더군요. 요즘에는 ATL, BTL이라는 용어가 들어가야 훌륭한 광고 기획서가 되는 것으로 착각하는 경향도 있는데, 사람들마다 다르게 쓰고 있는 이 말을 구체적으로 설명해주시죠.의견이 분분했지요. 그런데 사람들이 돌아다니면서 만날 수 있는 접점이라는 개념을 바탕으로 그 접점이 제도화되어 있으면 ATL로 보고 그렇지 않으면 BTL로 보는 것이 옳습니다. 제일기획의 미디어 믹스는 ATL 영역을 확대하는 방향으로 이루어지고 있는데, TV, 라디오, 신문, 잡지, 케이블TV, 인터넷, 위성TV, DMB, 교통, 지하철, 옥외, 극장 같은 12개 매체를 커버하며 이 모든 것을 ATL로 보거든요. 반면에 비 제도화되어 있는 광고 영역에서 게릴라 마케팅을 전개한다거나 프로모션 과정에서 어떤 이벤트를 한다거나, 특정 지역에서만 모바일 할인 행사를 한다거나 하는 비 제도화된 광고 커뮤니케이션 영역을 BTL로 봅니다. 예를 들어, SP 수단이나 가치 확대 활동인 전시, 이벤트, 스폰서십, PR, DM, TM, CRM, PPL 같은 직접적인 활동이 BTL의 영역인데, 미디어를 매개체로 활용하지 않으면서 판매와 유통을 지원하는 프로모션 활동이 모두 여기에 포함된다고 보시면 됩니다.
>> 그렇다면 시간이 흐르면서 BTL 영역으로 분류되던 매체가 제도화되면서 ATL 영역으로 편입되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고 생각되는데요.충분히 그럴 수 있습니다. 영어에서 어버브(above)란 수면 위에 떠 있느냐 밑으로 가라앉느냐의 접점이라고 할 수 있는데 수면 위로 떠오른다는 것은 계약서를 주고 받건 구두로 계약을 하건 간에 계약에 따라 공식적으로 매체비를 집행하는 미디어라는 뜻이죠. ATL과 BTL이라는 용어 자체가 미디어와 관련된 커미션 관행에서 유래했어요. 광고회사의 청구서에는 ATL 항목이라고 해서 매체 커미션이 기록되는 칸이 있었고, BTL 항목, 예를 들어 판매 전단지 같은 부분에 대해서는 광고회사에서 커미션을 받지 않고 직접적인 서비스 요금만을 받았죠. 관리와 계산상의 편의에 따라 커미션을 받을 수 있는 모든 광고 매체 제작비를 ATL 항목으로 간주했고, 커미션을 받지 않는 모든 서비스 활동을 BTL 항목으로 구분하여 사용한 데서 유래한 용어로 알고 있어요.
>> 4대 매체에서는 워낙 광고를 많이 했고 그쪽에서 아이디어가 더 이상 안 나오니까 BTL에서 아이디어를 많이 찾고 그것이 마치 최신 트렌드인 양 생각하는 친구들도 있는데 좀 위험한 생각이 아닌가 싶어요.참 위험한 발상이죠. 그래서 저희들은 ‘쓰루 더 라인(Through The Line)’이 필요하다는 말을 많이 하는데, 어버브(Above)와 비로우(Below)가 통하지 않으면 캠페인은 완성되지 않는다고 보고 있어요. BTL에서 어쩌다 성공한다 해도
ATL에서 받쳐주지 않으면 브랜드 충성도가 지속적으로 구축되지 않아요. 마찬가지로 ATL 쪽에서 아무리 성공적인 캠페인을 전개한다고 해도 소비자와의 접점 단계에서 BTL이 받쳐주지 않는다면 광고비를 낭비하는 결과가 됩니다. 정반합(正反合)의 관계는 아니지만 시너지를 일으키는 상호 보완적인 관계라고 할 수 있어요. 제가 매체의 종류를 세어보니까 대략 50가지 정도가 되는데, 그중 1/3 정도가 ATL 영역에 속하고 나머지 2/3가 BTL 영역에 해당됩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렇게 보는 관점도 있고 가시적으로 아주 분명하게 규정되어 있는 4대 매체와 케이블TV 정도만 ATL로 보는 사람도 있어요.
지금은 매체 집행에 대한 의사결정의 패러다임이 완전히 바뀌었다고 할 수 있어요. 앞으로의 매체 전문가에게는 시간대나 지면을 구매하는 능력보다 광고 캠페인의 방향에 맞게 미디어 효과성을 극대화할 수 있는 치밀한 기획력을 강화하는 문제가 가장 중요하다고 봐요.
>> 매체 전문가로서 브랜드 적합성, 타깃 적합성, 실행 적합성을 고려하여 매체 운영전략을 짰는데, 광고주에게 승인을 얻지 못하고 거절당하면 상당한 심리적 갈등을 느끼실 것 같은데요.
처음에는 그런 문제로 고민도 많이 했어요. 그런데 비용의 효율성이나 집행의 효율성을 고려해서 매체 기획안을 짜는 데 익숙해져 있기 때문에, 광고주의 결정에 비교적 유연하게 대응하며 논리적으로 설득하는 편입니다. 지금은 대형 광고주나 중소규모 광고주나 할 것 없이 과거처럼 광고비를 일단 쓰고 본다는 개념보다 써서 어떤 결과를 가져와야 한다는 생각이 훨씬 강하죠. 그리고 광고비 집행이 과거처럼 어떤 한 사람의 독단에 의해 이루어지기보다 마케팅 지향적인 맥락에서 결정되기 때문에 매체 집행에 대한 의사결정의 패러다임이 완전히 바뀌었다고 할 수 있어요. 광고주 쪽에도 매체 전문가들이 포진해있기 때문에 앞으로 매체 전문가가 설 자리가 점점 줄어들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때가 종종 있어요. 앞으로의 매체 전문가는 시간대나 지면을 구매하는 능력보다 광고 캠페인의 방향에 맞게 미디어 효과성을 극대화할 수 있는 치밀한 기획력을 강화해야 한다고 봐요.
그는 매체의 사회적 영향력이 확대되는 현상에 주목하면서 치밀한 기획력만이 매체 기획자의 존재의 이유를 가져다준다고 보았다. 갈수록 4대 매체를 활용하는 광고에 대한 제약이나 견제가 심해지고 있기 때문에 매체 기획자들은 창의적인 광고물을 활성화시키기 위해 마케팅 커뮤니케이션 활동의 새로운 접점을 개척하는 데 혼신의 노력을 경주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때, ATL이냐 BTL이냐의 문제를 넘어서 창의적인 광고 메시지의 대중적 영향력을 확보하는 문제가 중요해진다. 따라서 ATL과 BTL을 통합적 맥락에서 인식하면서 ‘경계를 넘나드는’ 매체 영역의 경계인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그렇기 때문에 매체간의 경계선에 서서 선택과 집중을 전략적으로 수행할 기획력을 갖춘 자만이 미디어 인간으로서 자기만의 길을 열어갈 수 있을 터.
>> 그동안 ‘광고는 아무도 못 말려’(1993)라는 에세이와 ‘한강’(2007)이나 ‘이 시대의 자화상’(2007) 같은 시집도 내셨습니다. 문단에 한 발 걸쳤지만 약간은 아웃사이더 쪽일 것 같고 직장인으로서도 경계인이라고 할 수 있는데, 경계에 서있는 사람들이 생각이 많고 팍팍한 경우가 많잖아요. 인간적인 고민이랄까….
인간적인 고민이 없는 사람은 없겠죠. 누구나 직장생활을 천년만년 하는 것은 아니니까요. 다만 자기 본연의 삶을 잃어버리지 않고 찾으려고 노력하는 자세가 중요하지 않겠어요? 언젠가 제가 정말로 꿈꾸는 본연의 삶을 찾아가게 되면 다시 만나 세상 문제에 대해 치열한 토론을 하고 싶어요. 아직은 직장에 매여 있으니까요. 저는 글 쓰는 사람이니까 어떤 분들이 내 글을 요구하면 그냥 주섬주섬 바로 표현하고 있어요. 미디어 현상에 관련된 글들이 보편적인데 직업인으로서의 의무감에서 그럴지 몰라요. 그러나 나중에 완전히 시의 세계로 돌아간다면 좀 달라지겠지요.
>> 혹시 광고를 소재로 해서 시를 쓰신 적이 있는지요? 함민복 시인이나 오규원 시인 같은 경우에는 광고를 소재로 해서 천민자본주의의 폐해를 고발하거나 현대인의 부질없는 일상을 형상화하기도 하던데요.
저는 광고를 소재로 해서 시를 쓰지는 않아요. 어떤 시인은 광고를 소재로 시를 많이 쓰지만 저는 광고 크리에이티브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알기 때문에 오히려 광고를 소재로 시를 쓰기가 어려운 것 같아요. 저는 사람, 자연, 그리고 차(茶)에 관심이 많아요. 그리고 대상은 또 바뀝니다. 크게 봐서 사람과 삶 그리고 자연이 제가 쓰는 시의 모티브라고 보시면 됩니다. 제가 문단에서 만난 시인들을 보면 대부분 어떤 범주에 갇혀 사는 경우가 많아요. 그들은 바깥 세계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거의 몰라요. 그래서 그분들은 바깥 세계에 대한 모티브를 광고에서 찾겠지요. 역으로 저는 바깥 세계에 살다보니까 그들과는 반대로 시의 본질적인 문제에 접근해보고 싶어요. 시의 본질적인 문제는 사람과 삶 그리고 자연을 벗어날 수 없잖아요. 그래서 그런지 우리 모임에서 만나는 시인들께서 제 시를 보시면서 철저히 승화되지 못했다는 말씀들을 많이 하세요.
그는 광고매체 전문가로 살아왔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세상의 모든 대상들을 자신의 매체로 느끼며 시를 써왔던 것은 아니었을까. 일찍이 마셜 맥루한(Marshall McLuhan, 1911~1980) 역시 우리가 생각하는 매체에 대한 통념을 넘어 ‘구텐베르크 은하계’라는 개념을 제시함으로써 미디어의 확장을 꿈꾼 바 있었다. 우리가 접촉하는 것들 모두가 섬세하게 나부끼는 유비쿼터스 매체가 아니었겠나.
>> 옛날로 돌아가서 안면을 보고 매체에 물량을 배정했던 관행을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비과학적 습성 같지만 매체 영업자의 안면이나 정성을 봐서 광고 물량을 배정했던 것이 꼭 나쁘다고만 할 수는 없을 것 같아요.
옛날이란 누구에게나 아름답잖아요. 제가 문학을 전공해서 그런지 사람 사는 사이에는 칼로 두부 자르듯 하지 못하는 요소들이 있어요. 그런 부분들을 인정하지 않으면 굉장히 건조해지는 측면이 있거든요. 예를 들어, 어떤 종교단체에 속해있는 신문이라고 해서 가시가 없는 것은 아니거든요. 사회가 요구하는 어떤 영역이 있기 때문에 유가부수가 적더라도 커버하는 부분이 있어요. 열독률이 많이 나오는 매체가 아무래도 효과가 크겠지만 커버하지 못하는 영역도 있어요. 이전에는 사람 사는 세상을 기본 축으로 해서 비즈니스를 했다면 지금은 계량적인 데이터를 요구하는 쪽으로 잣대가 바뀌었을 뿐이지 그래도 매체의 다양성과 사람 사는 훈훈한 정이 오가는 것이 좋다고 봐요.
>> 과학적인 접근법으로 매체 기획을 하는 젊은 매체 기획자들의 철저한 업무 자세가 좋기는 하지만 인간적인 정을 무시하는 대목에 아쉬움이 남는다는 말씀이시죠?
미디어를 시장의 관점에서 보면 냉정해야 하지만 좀 어렵더라도 같이 가야하는 공생의 측면도 있어요. 시장의 논리를 어느 정도나 수용하는 것이 바람직한지 검토해야 할 시점이 아닌가 싶어요. 제 또래의 생각도 다 틀린 것은 아니고 젊은 친구들의 생각도 모두 틀렸다고 할 수는 없어요.
나이가 들면 슬며시 인정해야 할 부분도 있는데 요즘에는 너무 극단주의에 빠져있지 않나 싶어요. 우리나라 제도가 가지고 있는 특장점을 살리면서 우리가 추구할 수 있는 함량을 효율화하면 좋겠는데 그 시기를 놓쳤다는 생각도 들어요. 극단으로 흐르기보다 조화를 모색할 필요가 있어요.
>> 그동안 여러 분들이 광고 창의성에 대한 말씀을 하셨는데, 매체 입장에서 보는 광고 창의성의 개념은 좀 다를 것 같습니다.매체의 관점에서 본다고 해서 달라질 것 같지는 않아요. 제가 크리에이티브 전문가가 아니라서 뭐라 말할 입장은 아니지만 어떤 시대에서나 사람들의 취향을 이끌어가는 어떤 트렌드가 있었죠. 이처럼 동시대의 코드를 잘 읽어내서 구체화시킨 아이디어가 광고 창의성의 전제 조건이 된다고 봅니다. SHOW 캠페인이나 SK텔레콤의 ‘생활의 중심’ 캠페인, 에쓰-오일의 ‘좋은 기름 이야기’ 캠페인은 시대의 트렌드와 만나게 하는 어떤 접점이 있어요. 간혹 시대의 흐름을 잘 끄집어내는 CM송 스타일이 유행하기도 하는데 그런 광고 역시 창의적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결국 시대의 트렌드와 만나게 하는 어떤 접점을 형성해주는 것이 광고 창의성이라고 생각해요. 아무리 좋은 아이디어라도 그 시대 사람들의 정서를 자극하지 못한다면 무의미한 메시지가 될 테니까요.
>> 개인적으로 광고를 평가할 때 어떤 점을 가장 먼저 보세요? 창의적인 광고라는 느낌은 어떤 순간에 오나요?우리 문화에 재미 요소가 부족하다 보니까 재미있고 시원하거나 말하고 싶던 가려운 부분을 잘 긁어 주는 광고들이 창의적인 광고라고 봐요. 시끌벅적 떠드는 유머광고가 아니라 조용히 웃기는 페이소스가 있는 광고들을 개인적으로 좋아해요. 억지로 웃기려는 광고가 많은데, 그 원인은 페이소스를 집어넣으면 이해하지 못하는 소비자의 문제이기도 해요. 물론 소비자를 무시하는 것은 아니지만 너무 노이즈(noise)가 많다 보니까 뭔가 단순하게 외치고 웃기려고 하는 것이죠. 광고 표현에서 고급 유머들이 일반화되려면 사회 전반이 성숙해지고 여유가 있어야 해요.
박정래는 매체기획 전문가답게 접점(接點)이라는 문제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다. 접점이란 세상의 그 무엇이라도 혼자서는 만들어낼 수 없으며 무엇과 무엇이 만나고 부딪히는 순간에 형성되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래서 그가 생각하는 광고 창의성의 개념은 ‘시대의 트렌드와 접점 만들기’이다. 아무리 메시지가 훌륭하더라도 그것이 동시대의 보편적 정서와 맞닥뜨리지 못한다면 대답 없는 메아리에 불과하다는 것이 그가 생각하는 광고 창의성의 핵심일 터이다.
이런 점에서 실행을 통한 목표 달성을 중요시하는 통합적 마케팅 커뮤니케이션 시대에는 ‘미디어 다양성’을 우리 시대의 지배적 가치로 인정해야 한다. 그가 말한 시대의 트렌드와 접점을 만드는 광고 역시 미디어 다양성이라는 토양 위에서만 무럭무럭 자라게 되지 않을까? 우리가 세상에서 만나는 접점이 모두 미디어라면 매체 전문가인 그에게 ‘내가 만난 새 세상의 매체들’이라는 미디어 수상록을 한번 써보라고 권하고 싶다. 매체 전문가의 치밀한 논리와 시인의 섬세한 감성이 그 속에서 접점이 되어 만난다면, 우리 시대의 표정들을 카메라로 접사 촬영하듯 그려낼 것이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