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미디어의 특성에 맞춘 크리에이티브의 차별화
영역과 매체에 의한 판촉활동 영역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데에 매체 기획자의 자리가 있다고
보았다. 매체마다 나타나는 미세한 차이들을 파악하여 창의적인 결과물을 실어 나르면서 광고
메시지의 효과가 나타나고, 다양한 매체간의 혼합을 최적화시킬 때 효율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브랜드 적합성과 타깃 적합성, 시장 적합성에 따라 매체 운영 전략을 수립하는 것이 매체 기획자의
일이라는 설명이다.
아무리 창의적인 광고라 하더라도 매체에 실리지 못하면 말짱 도루묵이다. 여러 국제 광고제에서
단 한 번이라도 매체에 노출된 광고만을 심사 대상으로 삼는 점 역시 매체의 중요성을 보여주는
근거이리라. 여러 매체를 복합적으로 소비하는 다중적 매체 소비활동 또는 복합매체 소비(polychronic
media consumption)가 일상화되고 있는 현 단계에서 광고 창작자들은 매체의 개념을
크리에이티브 맥락에서 새롭게 정의해야 할 필요가 있겠다.
제일기획 미디어전략연구소 박정래(1959~) 소장의 광고 이력은 오직 매체 분야에서 일했다는
한 줄로 끝난다. 그는 이미 몇 권의 시집을 낸 시인이기도 하지만, 매체 기획자로서 신문에
‘대포’ 광고(무신탁 게재)가 판을 치던 1980년대 후반부터 지금까지 우리나라 매체의 변화를
예의 주시해왔다.
>>매체의
다양성이 그 어느 때보다 주목받고 있어요. 요즘에는 매체에 광고물을 노출하기가 쉽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매체 간 융합이나 수용자의 다중적 매체 소비로 광고 크리에이티브도 달라질
것 같은데요.
매체란 결국 소비자가 광고를 만나는 접점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 접점이 다양해졌다고 해서
주요 매체가 사라지지는 않아요. 아직도 여전히 영상 매체에서 텔레비전의 위력이 막강하고 신뢰도
측면에서 신문을 무시할 수 없어요. 텔레비전이 인지 매체라면 신문은 설득 매체의 경향이 있어요.
다양해진 접점들을 주요 매체와 어떻게 조화시키느냐가 관건입니다. 크리에이티브 측면에서도 하나의
콘셉트와 아이디어를 인터넷이나 옥외 같은 다양한 매체로 확장하고 통합해 나가는 것이 중요해졌어요.
당연히 주요 매체가 메시지 효과를 좌우하지만 그밖에도 새로 등장한 미디어 접점에 반응하는
소비자의 특성을 무시해서는 안 됩니다. 반드시 어느 한쪽으로 치우쳐야 하는 최대공약수의 개념이
아니라 어떻게 공통분모로 나누느냐 하는 최소공배수의 개념으로 이해할 필요가 있어요.
>>그동안
제일기획에서는 다양한 미디어 전략모델을 개발해서 활용해 왔습니다. 하지만 모델은 모델일 뿐이라
매번 정확히 들어맞는다고 하기 어렵죠.
정확히 말하자면 이런 모델들은 어떤 해결책을 결정해주는 것이 아니라 의사 결정을 지원해주는
지원 시스템이라고 봐야죠. 정답을 제시하지는 않고, 수용자 조사에서 시작해서 기본적인 자료
분석을 하고 이후에 평가하는 데까지 단계마다 현재 상태에 대해 정확히 의사를 결정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는 것이지요. 최종 의사결정은 기획자의 몫이에요. 끊임없이 투자함으로써 항상 현실적인
해답이 도출되도록 하는 그 과정 속에서 최적의 의사결정을 하도록 광고주에게 제안해드린다고
보시면 됩니다. 이 과정에서 어떤 미디어 믹스(media mix)의 정답 여부를 놓고 광고회사
내부에서 고민이 많은데, 접점의 정도가 많고 적음에 따라서만 판단하지는 않아요.
>>그렇다면
어떠한 판단 기준이 따로 있는지요?
매체 기획자들은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적합성을 반영하여 판단해야 합니다. 첫 번째가 매체와
브랜드 지표와의 적합성입니다. 어떤 매체가 어떤 브랜드와 과연 얼마나 맞아떨어지느냐 하는
지표를 의미하는 것으로 여기에는 접점 이상의 의미가 있어요. 두 번째가 매체와 타깃과의 적합성입니다.
그러니까 어떤 매체가 어떤 브랜드의 캠페인 타깃과 궁합이 잘 맞는가 하는 것으로 매체의 적합성을
지표상으로 평가할 수 있어요. 마지막으로 매체와 시장과의 적합성입니다.
크리에이터들이 매체에 대해 더 명확히 이해해야
합니다. 새로운 미디어 영역들을 이해하고 대응하는 것이 중요한데 관심을 갖고 경험해보지
않으면 아무리 좋은 아이디어라도 표현이 달라지기 때문이죠.
우리나라의 광고매체 환경은 정말로 다양한데, 실제로 시장에서의 실행 여부가 적합한지 따져봐야
합니다. 매체 기획자는 이 세 가지를 바탕으로 의사결정을 해야죠.
>>그런
기준으로만 할 수 있다면 매체 기획자의 존재감은 어디에서 찾나요? 광고회사의 제안에 광고주가
동의해주면 굉장히 행복한 매체 집행이 되겠지만 우리나라 광고주들은 대체로 매체 효율성으로
판단하기보다 매체별로 예산을 나눠주는 관행에 익숙하지 않나요?
광고주들이 매체에 대해서 잘 모른다는 판단은 오해입니다. 실제로 매체 돌아가는 상황이나
어떤 매체의 혜택에 대해 광고회사보다 더 많이 알고 있는 광고주가 굉장히 많아요. 우리나라
100대 광고주의 90퍼센트 정도는 매체를 효율적으로 관리하는 나름대로의 노하우나 방법을
가지고 있어요. 그래서 매체 기획을 본격적으로 하기 전인 프리 바잉(pre-buying)
단계에서 효율성을 예측하는 훨씬 정교한 자료를 요구하기도 합니다. 최근 들어 자료를 더
줄 테니 회사의 매출과 광고비의 상관관계를 더 연구해보자고 제안하는 광고주들도 많이 늘었어요.
업계에서는 투자 대비 효율이라고 해서 보통 ROI(Return on Investment)라는
말을 많이 쓰는데 어떻게 보면 전체의 매출개념에서 전체의 경상이익이나 수입개념으로 패러다임이
바뀜에 따라 나타난 현상이죠. 매체 기획자의 존재감을 말씀하셨는데, 제가 보기에는 어떤
캠페인을 직접 관장하고 참여한다는 점에서 그래도 자부심이 굉장히 높지 않나 싶어요.
그는 매체 기획자들이 브랜드 적합성과 타깃 적합성 그리고 시장 적합성에 따라 매체 운영
전략을 수립해야 한다고 말했다. 두루 알다시피 적합성(appropriateness)이란
광고 창의성의 평가 준거에서도 광고 표현이 얼마나 상품과 어울리며 적절하며 만족스럽고
정교한가를 나타내는 요인이었다. 또한, 적합성은 광고 표현의 완성도를 설명하는 개념이자
광고에서 창의성을 담보하는 하나의 조건이 아니었던가. 같은 맥락에서 그도 매체 운용에서의
적합성이 매체비의 효율적 집행을 가능하게 한다고 보았다. 그렇지만 매체들의 다양한 조합을
바탕으로 효율성을 높인다 하더라도 최소공배수의 개념으로 접근해야지 그렇지 않으면 미디어
크리에이티브를 발휘하기 어렵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겠다.
>>미디어
크리에이티브라는 용어를 사람마다 다르게 이해하는데, 구체적으로 무엇일까요?
미디어 크리에이티브는 크게 두 가지 영역으로 구분됩니다. 하나는 미디어의 특성에 맞춘
크리에이티브의 차별화라는 영역이고, 다른 하나는 흔히 말하는 ‘미디어 프로모션’이죠.
크리에이티브의 차별화는 매체에 따라 광고 표현의 형태를 변화시키는 것을 생각해볼 수 있고,
미디어 프로모션은 세일즈 프로모션에 연관된 입체적인 통합 마케팅 커뮤니케이션 행위까지를
포함해서 보는 경향이 있어요. 두 가지가 서로 같은 듯 다른데, 인터넷 광고에서 시작해서
텔레비전 광고로까지 아이디어를 확장하는 경우도 있고, 구체적인 목표에 알맞게 크리에이티브를
통합적으로 운영함으로써 매체 자체를 촉진하는 경우도 있어요. 예를 들어, 삼성전자 노트북
센스의 ‘센스 뉴욕원정대’처럼 여러 가지 프로모션으로 연결시키고 그 결과를 다시 텔레비전
광고나 케이블텔레비전 프로그램의 형태로 진행할 수 있겠죠.
>>요즘은
‘미디어 플랫폼’이라는 말도 자주 쓰던데요? 매체 환경이 바뀌면 크리에이터들의 아이디어
발상법도 달라져야 하지 않나 싶어요. 대강은 알아도 정확히는 모르는 상태에서 기존에 해오던
방식대로 아이디어 발상을 하는 광고 창작자가 있다면 한참 뒤떨어지겠죠.
좋은 지적을 해주셨는데요. 크리에이터들이 매체에 대해 더 명확히 이해해야 합니다. 어떤
크리에이터들은 새로운 매체에 상당히 둔감해져 있어요. 다양한 미디어 플랫폼 영역에서 다양하게
영상물을 전달하다보니까, 인터넷에도 인터넷 전문 크리에이터가 별도로 있고 매체사에 소속되어
미디어 프로모션 아이디어 발상을 하는 경우도 있는데, 앞으로는 아마추어적이면서도 특수한
아이디어 발상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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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실
아이디어 발상에서도 효율을 추구할 필요가 있는데, 인터넷광고 전문가나 DMB광고 전문가 식으로
영역을 분리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쉽지만은 않거든요.
제 말씀은 ‘이것만 하겠다’ ‘저것만 하겠다’ 식으로 특화시켜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영역을
넘나드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는 뜻입니다. 그만큼 많이 고민해서 후배들에게 추월당하지 말아야죠.
새로운 세대들은 자라면서 모바일 폰이나 인터넷에 익숙해지니까 아이디어 발상을 그쪽으로 내는
데 자연스럽고 익숙해요. 기존의 크리에이터들이 어떻게 그 영역들을 이해하고 대응하느냐가 중요한데,
직접 경험해 보는 방법밖에 없어요. 관심을 갖고 경험해보지 않으면 아무리 좋은 아이디어라도
표현이 달라지기 때문이죠.
>>광고
창작자들이 생각의 전환을 잘 안 하는 것이 문제가 되겠네요.
미디어 측면에서는 구조적으로 미세한 차이들이 많아요. 예를 들어, 온라인에서도 배너와 동영상이
동시에 뜨지만 기술적으로 구사할 방법이 굉장히 많으니까 그런 방법을 어떻게 창의적으로 활용하느냐
하는 측면이죠. 어찌 보면 잔은 하나인데 그 잔에서 자기 기술을 어떻게 연마하느냐, 혹은
전혀 새로운 기술을 어떻게 도입할 것인가 하는 점이죠. 크리에이터라면 자연스럽게 자기 아이디어가
주류가 되도록 제안하는 것이 중요하지 누가 더 잘 아느냐 하는 것은 또 다른 문제라고 봐요.
아무래도 젊은 세대들이 새로운 매체의 아이디어를 표현하는 방법이 뛰어나겠죠.
>>광고
내용을 미리 본 다음에 매체 기획을 하시는지요? 원칙적으로는 그래야 한다고 보는데요.
그렇지는 않고 헤드미팅이라고 해서 각 부문의 책임자들이 만나 안을 설명하면서 서로에게 힘을
실어줘요. 필요에 따라서 언제든지 만났다 헤어지죠. 최고로 많이 모이는 회의에서는 영업,
마케터, 크리에이터, 미디어 플래너, BTL 플래너, 온라인 플래너가 다 모여 회의를 하며
서로 팁을 교환하죠. 온라인 쪽에서 이렇게 만들고, 인쇄에서는 저렇게 디자인하고, 텔레비전
콘티는 어떻고 하면서 설명하면, BTL쪽에서는 어떻게 조정하겠다는 식으로 아이디어나 크리에이티브
콘셉트를 가지고 어떻게 잘 표현하고 전달할 것인지 동시다발적으로 토론하며 결론을 내리죠.
서로가 배우는 즐거움도 있고 실수를 최소화함으로써 아이디어 컴퍼니를 지향하는 거죠.
그는 미디어의 특성에 맞춘 크리에이티브의 차별화 영역과 매체에 의한 판촉활동 영역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데 매체 기획자의 자리가 있다고 보았다. 매체마다 나타나는 미세한 차이들을 파악하여
창의적인 결과물을 실어 나르는 데에서 광고 메시지의 효과가 나타나고, 다양한 매체간의 혼합을
최적화시키는 데에서 효율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매체 집행을 이렇게 하면 경쟁사의 캠페인과
경쟁하는 상황에서 그 효과가 보다 선연히 드러날 터이다.
>>예를
들어 SHOW 광고처럼 어떤 광고가 성공할 조짐이 보이면 장기 캠페인으로 밀어붙이는 경우가
많은데, 이때 매체 기획자 입장에서 가장 신경이 쓰이는 점은 무엇인지요?
광고주가 열린 마음을 가지고 있지 않으면 어떤 캠페인도 진행되기 어려워요. 매체 쪽에서도
고민이 많죠. 다양한 아이디어들이 나왔는데 아이디어마다 어느 정도 수준에서 노출시켜야 최상의
시너지 효과를 내겠는가하는 고민이죠. SHOW는 론칭 단계에서 매체 기획자들의 제안 내용을
의사결정하기까지 쉽지만은 않았지만 결과적으로 론칭 초기에 집중함으로써 기대 이상의 효과를
가져왔어요. 각 광고물에서 아주 재미있는 소재들을 제시함으로써 그 메시지가 브랜드 이름과
절묘하게 어울리고 SHOW라는 브랜드의 로열티를 높이는 캠페인이 가능했어요.
>>SHOW
캠페인이 너무 성공적이어서 T가 다시 따라잡기 힘들 것으로 봤는데 ‘되고송’이 유행하면서
매체에서의 영역 싸움이 퍽 흥미롭게 전개될 것 같아요. 크리에이티브의 차이도 중요하지만 매체의
시간대 문제만이 아니라 미디어 크리에이티브 맥락에서 다양한 시도가 가능하겠죠.
아직까지는 매체 기획자가 크리에이티브 영역까지 평가하며 왈가왈부하는 것은 좀 무리가 있다고
봐요. 나중에 가서 전체적으로 평가를 할 테고 지금은 단지 추정할 뿐인데 현재 자료를 보면
SHOW와 T가 매체비를 거의 비슷하게 썼어요. 결국 같은 아이디어라도 어떤 매체에 어떻게
노출시키느냐에 따라 결과가 엄청나게 달라지기 때문에 매체의 선택이 광고 효과를 결정하는 데
큰 역할을 해요.
다중적 복합매체를 소비하는 현 단계에서 잠시 20여년 뒤로 되돌아가 보자. 그가 사회 초년병이었던
1985년 무렵, 새로 창간한 어느 잡지사에서 보낸 창간안내 공문에 매체를 ‘매춘’으로 표기한
에피소드는 현재의 시점에서 보면 너무 아득할 뿐이다. 그 잡지사에서는 “서울시 종로구(鍾路區)
평동(坪洞) 108-2 보영빌딩 제일기획(第一企劃) 매체국(媒體局) 신창규(愼昌揆) 국장님”이라고
적어야 옳은 것을 “제일기획 매춘국 진창발 국장님”으로 써서 공문을 발송했는데, 한자를 몰랐던
탓에 이런 해프닝이 일어났다기보다 매체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던 그 시절 풍경의 단면이리라.
이제와 새삼, 매체의 지면이나 시간을 사고파는 행위를 흔히 광고의 꽃을 파는 것으로 보고
봉투에 ‘매춘국’이라고 써서 보낸 장면에 “우리는 몸 팔고 시간과 지면을 사야하는 영업맨들이니까
매춘국도 그럴듯하다고 한바탕 웃어버린 적이 있었다.”는 그의 고백은 실로 눈물겹기까지 하다(‘광고는
아무도 못말려’, 자유문학사, 1993, 155~162쪽). 매체국은 ‘매춘국’, ‘모체국’,
‘매체부’ 같은 여러 이름으로 잘못 표기되다가 지금에 와서 미디어전략연구소라는 그럴듯한 이름까지
얻었으니 가히 상전벽해(桑田碧海)라고 할만하다. 그 사이, 그가 매체와 크리에이티브에 대해
기록한 비망록 역시 엄청나게 변했을 터이다.
(다음호에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