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김종원은 공감성의 여부가 광고 창의성을 결정한다고 보았다. 따라서 그가 생각하는 광고 창의성의 개념은 ‘공감의 유발’이다. 공감을 유발하는 광고는 기실 누구나 하는 말이지만 그의 진술에는 남다른 구석이 있다. 광고 표현이란 태생적으로 과장의 속성을 지니게 마련인데, 그렇더라도 판매 메시지를 과장되게 드러내기보다 숨긴 채로 다정다감하게 다가가야 한다. 그래야 소비자의 공감을 유발하는 창의적인 광고의 반열에 들어설 수 있다는 것이다.
사실 15초 광고 영상이란 광고 창작자의 입장에서 보면 1초의 영상 15개가 합쳐진 것이 아니라, 채워야 할 ‘백지의 공포’가 15초 동안 연결된 상태나 마찬가지다. 그 백지 안에 수백수천의 그림들을 그려 넣을 수 있는데 그 그림은 이른바 콘셉트를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따라서 광고 콘셉트 찾기란 선승의 선문답과 흡사할 터. 모범 답안이란 애당초 존재할 수 없지 않겠는가. 다만 각자 자기 스타일대로 해석하여 만든 결과물을 정답이라고 착각할 뿐이다.
>> 광고를 만드는 과정에서 자기만의 스타일을 지키는 것이 중요한데 본인이 찾는 경우도 있겠지만 주변의 영향을 받아 자기 스타일을 만들어갈 때도 있지 않을까요?
의도하지는 않았겠지만 웰콤의 박우덕 사장님이 제 스타일을 유도해준 것 같아요. 그 분 영향이 컸어요. 종이 한 장을 주고 마치 선문답하듯이 답 좀 풀어보라고 하는데 요즘에는 많이 익숙해졌지만 처음에는 대책 없었죠. 제가 지금 웰콤에 가있는 김원국 부사장과 낮이고 밤이고 고민을 같이 하고 서로 답을 풀어주곤 했는데, 선문답하는 과정에서 많이 배웠지요. 건방진 말일지 몰라도 어떤 때는 답이 숙제보다 나을 때도 있었어요. 하지만 정말 어려워서 오래오래 매달리게 하는 숙제들도 있었죠. 그런 과정에서 저절로 어떤 스타일이나 형식이 만들어졌겠죠.
>> 감독들이 너무 쓸데없는 데 시간을 낭비해서 스타일이 구겨지는 경우도 많은 것 같던데요.
1990년대에는 감독에게 크리에이터라는 말을 써도 어색하지 않을 정도의 일을 했어요. 하지만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제도가 생기면서 지금은 감독의 역할이나 일의 질이 낮아졌어요. 후배 감독들 일하는 것 보면 너무하다 싶을 정도로 심부름 하러 왔다갔다 하는데 안타까워요. 감독의 역할을 분명하게 해주는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들이 많아졌으면 좋겠어요. 감독으로부터 얻을 게 많은데 엉뚱한 데 힘을 쏟게 만드니까 결국은 광고주나 광고회사에게 손해에요. 일을 주고받는 입장에서 너무 사무적으로 일을 풀어나가니까 감독의 역량을 다 뽑질 못 해요. 많이 아쉽죠.
>> 커머셜 업계에도 외국인 감독이 진출할 가능성이 많아요. 그런데 아무리 뛰어난 감독이라도 한국인의 정서를 잘 표현할 수 있을지 의문시됩니다. 외국인 감독의 국내 진출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저는 환영해요. 그들이 우리 정서를 이해하겠느냐는 의문도 있지만 우리 정서를 다 이해하지 못해도 걸러줄 수 있는 장치가 있기 때문에 누가 오더라도 충분히 해낼 수 있다고 봐요. 예를 들어 대만 감독이 찍은 대한항공의 ‘몽골’ 편을 보세요. 영상이 참 좋아야 되는 광고인데 제가 찍었다면 그만큼 했을까 싶어요. 그리고 우리나라 사람들 정서로 했을 때 그 맛이 나왔을까 하는 생각도 들고요. 어쨌든 외국인 감독들이 우리 감독들한테 자극도 좀 줘야 되고 광고주들한테 보탬도 좀 줘야 합니다. 그런 사람들이 많아지는 게 좋아요. 저도 자주는 못해봤지만 일본 가서 일본 커머셜 연출도 해보고 했는데, 우리는 우리대로 그들이 모자라는 부분을 채워주고 그들은 그들대로 우리나라에 와서 작업하고 그러면 오히려 자극을 받아 서로 발전한다고 봐요.
>> 그러니까 지나치게 경쟁관계로 볼 필요가 없다는 말씀이죠? 하기야 국가간 창작의 교류를 억지로 막다보면 결국 우리만 폐쇄의 길을 걷겠죠.
그렇죠. 자꾸 교류하고 부닥치고 자극도 받고 해야지 안주하면 절대로 안 돼요. 가령 어떻게 저런 콘티를 팔았을까, 어떻게 저런 컷을 찍었을까, 하며 부러워하던 일본에 가서 꽤 유명한 회사의 기업광고를 하게 되니까 저로서는 개인적으로 영광이었지만, 시스템의 차이 같은 것들도 좀 느꼈어요. 우리는 손해가 나도 참고 어떤 목표를 향해서 서로 양보해서 만들어 내는 그런 게 있는데 일본은 좀 달라요.
공감의 광고가 꼭 휴머니즘을 의미하지는 않아요. 리얼리티나 휴머니티가 공감대를 끌어내기 좋은 소재일 뿐이지
휴머니즘이나 리얼리즘이 있어야만 공감한다는 뜻은 절대로 아닙니다. 광고에서 공감이란 소비자와 광고가 서로서로 알아본다는 것이라고나 할까요?
|
김종원
감독이 작업한 KB국민은행 ‘정명훈의 나눔’ 편과 극장용으로
제작된 보해 김삿갓 소주 광고. |
|
>> 어떤 면에서는 냉정하지만 일본의 그런 시스템이 체계적일 수는 있지 않을까요?
그럴 수도 있겠죠. 그때 딱 하루 촬영할 예산이었는데 날씨가 안 좋아 당일 날씨로는 도저히 찍을 수가 없었어요. 동경이 확 밝아지는 미속 촬영이 필요했는데 동경 시내가 안 보이는 거예요. 그래서 결국 제가 가져간 카메라로 그 전날 테스트 촬영을 해 놓은 컷이 됐어요. 다들 고개 숙이고 걱정하는 상황에서 사실 어제 찍어놓은 게 있으니까 테스트를 해보자고 제안해서 현상을 걸었는데 너무 잘 나와 통과했지요. 우리 같았으면 감독이 연출료 안 받는다고 하며 어떻게 해서든지 그 다음날에 또 카메라를 뻗쳤겠죠. 십시일반으로 이번에는 각자 손해 보자고 하고 다시 찍는 것이 우리 정서인데 그들은 아쉽지만 그냥 탁 끊어 버려요. 그런 것도 시스템이 굴러가려면 당연히 필요하지만 진짜 어떤 결과를 위해서 몸을 아끼지 않고 주머니를 다 털어서라도 하는 맛도 좀 있어야죠.
사상의 공론장(public sphere)이라는 용어가 있듯이 표현의 공론장이라는 말도 가능하다. 감독들이 너무 하릴없는 잡무에 시달리고 있는 현실을 개탄하는 그는 감독들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서라도 표현의 시장을 개방해야 한다고 보았다. 광고 창작자라면 국적을 초월하여 누구나 표현의 공론장에서 각자의 개성으로 경쟁해야 발전한다는 것. 따라서 외국 감독들이 우리네 정서를 담아내지 못할 것이라는 배타주의도 경계해야겠지만 외국 감독이라면 맹목적으로 신봉해 마지않는 식민근성도 철저히 배격해야 하리라.
>> 편집을 하다 보면 한 커트의 차이가 광고를 바꾸니 모든 것이 선택의 문제잖아요. 이걸 넣을까 저걸 넣을까 하며 갈등하는 상황이 벌어지는데, 결국 어떻게 선택하시는지요?
편집만을 예로 든다면 남하고의 갈등도 있지만 자기하고의 갈등이 더 커요. 광고주나 광고회사에서 최종 결정을 하니까 숙제내주는 사람하고의 갈등도 크죠. 그런데 편집이란 감독이 할 수 있는 유일한 언어라고 생각하거든요. 누군가 말했듯이 연출자는 카메라를 작가만의 눈처럼 써야하는데, 촬영할 때 어떤 문법이 있는 것처럼 편집이란 감독한테 가장 중요한 언어라고 할 수 있어요. 그래서 그 순간 굉장히 진지해져야 하고 집중해야 합니다. 이 커트 저 커트 고르다보면 너무나 다른 이야기가 되는 경우도 많기 때문에 마지막 순간까지도 갈등의 연속이죠. 이런저런 생각이 겹치고 계속 고민되면 출발할 때 어떤 생각을 했는지 처음으로 돌아가요. 찍고 나서 그림 위주로 붙이다보면 처음에 했던 생각을 잊어버리는 경우가 많아요. 그렇게 하다가 아차 싶을 때 처음에 어떤 생각으로 콘티를 해석했는지 돌이켜보면 되게 쉬워져요.
>> 광고의 마지막 부분에 같은 광고주의 다른 상품 메시지를 잠깐 끼워 넣는 트레일러를 주문하는 경우가 많잖아요? 제가 볼 때 그것은 감독의 유일한 언어인 편집권을 심각하게 침해하는 측면이 있어요. 감독님 광고에는 트레일러가 거의 없는 것 같던데 그동안 어떻게 편집권을 지켜 오셨는지요?
요즘에도 트레일러 주문하는 사람들이 많아요. 상품 종류가 많아서 트레일러를 한다기보다 끝에서 한 마디 쳐서 기억시키려고 하는데, 사전에 치밀하게 계획된 것이 아니라 광고주가 준비가 안 된 감독들한테 “현장에서 몇 가지 해봐주시죠.” 이러는 거죠. 감독들은 대책 없이 고민하다가 모델한테 주문하는데 절대로 좋은 결과가 안 나와요. 그런 것 잘 해주면 “광고 좋네.” 그러는데 굉장히 무책임한 말이죠. 또 ‘반전’이라는 단어를 꼭 붙여서 주문해요. 아주 황당해지는데 제 영상에 트레일러가 붙으면 어색해진다는 것을 대부분 공감하니까 요즘에는 그런 주문이 많이 줄었죠. 저는 광고주나 광고회사와 충돌하지는 않고 이렇게 저렇게 설득하는 편인데, 먼저 왜 안 되는지를 설득하고 찍어요. 트레일러를 가편집해서 보여주면 누구나 어색한 것을 느끼잖아요. 저는 누구하고 잘 부딪치지 않는 편이에요. 서로 불편해지니까요. 강력히 주장하다가 때로는 확 포기하고 물러서요.
>> 모든 장르에는 스타일이나 문법이라는 게 있잖아요. 어떤 광고는 기승전결이 분명하고 어떤 광고는 대책 없이 툭 던지죠. 감독님은 그동안 나름대로 어떤 영상 문법을 만들어왔다고 생각하시는지요?
광고를 대할 때 생각했던 모든 것들이 나타났겠죠. 문학에서도 1인칭 2인칭 3인칭이 있듯이 저 역시 광고에서 인칭을 지켜요. 50mm 렌즈가 눈으로 보는 것과 비슷한 각도라고 해서 표준렌즈라고 하잖아요. 어떤 것을 객관적으로 보고 싶으면 50mm 위로 올라가죠. 50mm 위로 올라가는 롱 렌즈는 점점 멀리 떨어져서 보게 되니까 객관성을 갖거든요? 와이드로 갈수록 다가가서 보는 것 같은 맛이 들고요. 그래서 어떤 스토리보드를 보고 촬영 콘티를 짤 때 어떤 인칭에서 피사체를 볼 것인지 생각해요. 어떤 때는 갈등을 줄이기 위해 50mm 렌즈 아래로는 아예 촬영장에 가져 오지 말라고 촬영감독에게 주문하기도 해요. 다른 렌즈를 가져오면 현장에서 자꾸 다르게 찍고 싶은 유혹이 생기거든요. 그게 저만이 설정해 놓은 표현 방법 같아요. 지키려고 애쓰지는 않았는데 하다보니까 어느새 그 문법을 지키고 있더라고요. 지키고 있다기보다 늘 그렇게 가고 있어요. 50mm를 기준으로 위로 가는 것은 다 위로만 갔고, 그 기준 아래로 가는 것은 다 아래로 갔어요. 그래서 몇 커트 안 붙이더라도 뭔가 영상에 통일감이 있어요. 2002년에 만든 포스코 광고를 예로 들어보죠. 승려들이 히말라야에서 축구하는 장면을 제가 멀리서 바라보는 시점으로 보여주고 싶어 그 히말라야 산 꼭대기 올라가면서 롱 렌즈만 가져오라며 표준렌즈 아래로 갖고 오면 알아서 하라고 했죠. 그렇게 되면 그 산 꼭대기에서 선택의 여지가 없잖아요. 거기서 꼼짝없이 그걸로 갈 수밖에 없는 거죠. 영상 문법이라고까지 말할 수 있을지 모르겠으나 제 나름대로의 방법이 있고 은근히 그런 고집이 있어요.
어떤 영역에서나 고집이 독특한 문법을 만든다. 김종원 감독 역시 자기만의 고집으로 밍밍한 영상 문법을 만들어 왔다. 남들이 보기에는 밍밍한 광고라고 하지만 그 안에는 분명 요란하지 않게 상품이 이야기하는 소리가 들린다. 트레일러를 붙이면 안 된다고 강력히 주장하다가 확 포기하고 물러서는 것 역시 도 아니면 모 식으로 고집을 부리는 또 다른 방법이리라. 50mm의 표준렌즈를 기준으로 위로 갈 것인지 아래로 갈 것인지를 사전에 결정해놓고 렌즈에 대해 일고의 미련도 남기지 않는 작업 방식 역시 단호히 고집을 부리는 한 단면이리라.
>> 어떤 문법을 가지고 있다는 자체가 중요한 게 아니라, 그런 고집으로 진솔함이 묻어나는 영상을 만들어낸다는 데 의미가 있겠죠. 사람마다 광고 창의성에 대한 생각이나 정의가 다른데 어떻게 보시는지요?
저는 소비자들이 공감을 느낄 때 굉장히 창의적인 광고가 될 수 있다고 봐요. 기발하거나 새롭거나 그런 것은 좀 다른 문제죠. 저는 외국광고를 잘 안 보지만 간혹 볼 때가 있어요. 그때 굉장히 좋다고 느끼는 광고는 새롭다거나 기막힌 영상이라기보다 공감이 오는 광고였어요. 제가 극장용으로 만든 보해 김삿갓 소주광고가 있어요. 내 친구 소주꾼들이 그 광고 보면 소주 한잔 생각난다고 그래요. 창의성이란 그런 공감대를 일으키는 것이 아닌가 싶어요.
>> 공감의 광고라는 말씀이 광고에 휴머니즘이 녹아있어야 한다는 뜻은 아니죠?
꼭 휴머니즘을 의미하지는 않아요. 리얼리티나 휴머니티가 공감대를 끌어내기 좋은 소재일 뿐이지 휴머니즘이나 리얼리즘이 있어야만 공감한다는 뜻은 절대로 아닙니다. 소주 마시고 싶은 사람끼리 소주 광고를 보고 소주 마시고 싶다는 생각이 통했을 때 광고가 효과적이라고 할 텐데, 제가 말씀드린 공감은 그런 쪽이죠. 광고에서 공감이란 소비자와 광고가 서로서로 알아본다는 것이라고나 할까요?
>> 어떤 광고를 보고서 그 제품을 써보고 싶은 마음이 들게 만드는 광고란 말씀이시죠?
네, 비슷해요. 예전에 서정원 감독이 개그맨 이홍렬 씨가 아무 말도 안하고 라면을 맛있게 먹기만 하는 광고를 만들었어요. 그런 접근이 식품광고의 새로운 스타일을 만들지 않았었나 싶어요. 공감의 광고에는 과장이 숨겨져 있으니까 과장이 들키지 않아요. 광고에서 어떻게 과장을 안 하겠어요? 소비자를 기만하자는 뜻이 아니라 표현에서의 과장을 절대 들키지 말자는 거죠. 저 역시 아직도 어려운데 광고에 표현된 어떠한 사실도 잘 꾸며진 사실이라 거짓말을 해서는 안 되니까 메시지 조절하기가 되게 힘들어요.
|
김종원은 공감성의 여부가 광고 창의성을 결정한다고 보았다. 따라서 그가 생각하는 광고 창의성의 개념은 ‘공감의 유발’이다. 공감을 유발하는 광고는 기실 누구나 하는 말이지만 그의 진술에는 남다른 구석이 있다. 광고 표현이란 태생적으로 과장의 속성을 지니게 마련인데, 그렇더라도 판매 메시지를 과장되게 드러내기보다 숨긴 채로 다정다감하게 다가가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 소비자의 공감을 유발하는 창의적인 광고의 반열에 들어설 수 있다.
여기에 이르러 그동안 그가 수백 편의 광고에서 구현한 영상 문법이 두 가지 형식으로 귀결되고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이륙(離陸)의 형식과 착륙(着陸)의 형식이 그것. 그는 상품과 시장과 소비자를 바라볼 때 50mm 표준렌즈라는 기준으로 고집스럽게 재단해왔는데, 대상을 객관적으로 보고 싶으면 마치 비행기가 이륙하듯이 50mm 위로 올라갔고 그 반대의 경우에는 50mm 아래로 내려갔다. 그렇기 때문에 그동안 그가 수백 편의 광고를 찍었을지라도 결국 ‘이륙의 형식’과 ‘착륙의 형식’이라는 단 두 편의 광고만을 만든 셈이다. 그는 이 두 편의 광고를 만들기 위해 그토록 통렬한 외로움 속에서 공감채집(共感採集)을 해왔던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