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광고 창의성을 ‘가치의 축적’이라는 관점에서 바라본다. 어떤 브랜드의
가치는 생활자의 마음속에 ‘무엇이 되느냐’, 다시 말해서 어떤 의미로 남느냐에 따라 정해지며, 광고 창의성의 수준에
따라 브랜드 가치가 달라질 수 있다 는 것이다. 광고 창의성 역시 ‘튀는’ 아이디어의 관점에서 평가하기보다 큰
틀에서 브랜드 가치를 제고하는 전망적시각에서 봐야 한다고 하였다.
그동안 많은 광고인들은 성공 사례를 통해 자신의 광고 인생을 이야기했다. 그런데 광고 실무 출신이지만 성공사례보다
오히려 실패사례가 더 많아, 광고주에게는 미안하지만 자신에게는 득이 되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 그는 교수채용에서도
33번 떨어지고 34번째에 지원해서 대학교수가되었다. 교수 지원에는 제출할 서류가 얼마나 많고, 한번 떨어졌을
때의 열패감은 또 얼마나 오래 갔던가. 그는 33번의실패마저 성공의 거울로 삼았던 것일까? 경성대학교 광고홍보학과
박기철(1960~) 교수는 실패로얼룩진 자신의 이력에서 지혜를 얻었으며, 이를 바탕으로 우리 광고학계에 새로운
관점을 제시하고 있다. 경영학 박사인그가 어찌 통계를 모르겠는가만 그가 쓴 논문들은 변인간의 인과관계나 상관관계를
검증하는 실증연구가 아닌, 깊은성찰과 도저한 사유의 침전물이다. 어떤 사람은 그를 광고학계의 이단아로 보겠지만,
나는 그를 우리 시대에 돋보이는창의적인 연구자로 본다.
>>논문
이야기부터 하지요. 경영학을 공부하셨으면 통계에도 일가견이 있을 텐데, 통계 수치가 없는 성찰적 논문을 쓰는 어떤
계기랄까 이유가 있으셨는지요?
저는 석박사 논문을 다 통계적 방법으로 썼는데 대학에 온 다음부터 생각이 달라졌어요. 객관적 방법에 의한 실증이
아니라 제안을 하기 위한 주관적 해석의 의미랄까, 그런 것이 중요해졌어요. 가설 검증을 위해 변인 X와 Y의 관계를
알아보는 것이 겉으로 보면 굉장히 그럴듯해 보이지만, 뻔한 가설들이 너무 많아요. 예를 들어, ‘밥을 먹으면 배가
부른다’가 있다면 밥이 X고 배부르다가 Y인데, 기껏해야 몇 숟가락 먹어야 배가 부를 것이냐, 이런 분석이거든요.
저는 그런 분석보다 뭔가 다른 제안을 하려고 해요. ‘소비자 조사 분석’ 대신에 ‘생활자 체험’을, ‘뉴스 가치’
대신에 ‘이야기 가치’를, ‘고객관계관리(CRM)’ 대신에 ‘생활자 체감 관리’라는 용어를 쓰자고 하며 다른 제안을
해 왔어요.
>>그런
논문이 창의적이기는 하지만 문제 제기나 새로운 제안에만 그치고 있어 탐색적 성격의 연구에 그친다는 점이 한계라고
봅니다. 변인과의 관계성을 알아보는데까지는 나아가지 못하고 있어요.
제 논문은 심사과정에서 객관성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기각을 많이 당해요. 개인적인 생각을 쓴 것이지 검증해봤냐며
반문하면 할 말이 없어요. 그런데 논문이란 객관적으로 실증하려고 쓰는 것이 아니고, 오히려 사례연구가 더중요하다고
봐요. 굉장히 똑똑한 사람도 석박사 논문을 쓰면서 멍청해지는 경우가 많아요. 성찰에 대한 철학도 있어야하는데 그런
것은 다 없어지고, 변인을 단순화해서 통계분석을 하다보면 생각이 굉장히 빈약해져요. 세상이란 X가 Y에게 미치는
영향처럼 그렇게 단순하지 않고 굉장히 복잡하거든요. 기존의 것을 대치하거나 부정하기보다 ‘넘는다’는 점에서 비욘드(beyond)
로 표현하고 싶어요. 앞으로도 ‘비욘드’의 측면에서 연구를 계속하려고 해요.
>>‘세상에서
가장 쉬운 광고책’에서도 광고에 대한 기존의 인식을 새롭게 해석했는데, 이 책을 쓸 때 어떤 점에 가장 신경을
쓰셨는지요?
기본(basic)이죠. 그 책에서 저는 크리에이티브보다 기본에 치중하며 광고의 기본을 익힐 수 있는 6가지 교과서를
비판적으로 검토했어요. 세상 모든 일에서 기본이 가장 중요하죠. 저는 노래 부르기를 좋아하는데, 기타 치면서도
부르고 ‘쌩’으로도 부르고 반주에 맞춰서도 부르고, 노래방에서도 불러요. 예를 들어, 노래방에서 노래를 잘 부르려면
두 개의 인위적인 것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비디오에서 벗어나고 마이크에서 벗어나서, 기본에 충실해야 해요. 노래방에서
비디오에 얽매이고 화면 가사에 얽매이니까, 필링이 안 나와요. 가사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는 것이 노래의 기본이듯,
광고를 하려면 브랜드 가치의 의미를 생각해야 해요.
광고
창의성이란 겉을 꾸미는 것이 아니라 속을 가꾸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속을 제대로 가꾸다보면 언젠가는 생활자들에게
흘러넘치게 됩니다. 광고 크리에이티브도 알고 보면 결과의 철학이 아니겠어요?
그는 일찍이 ‘세상에서 가장 쉬운 광고 책: 박기철의 체감 광고학’(커뮤니케이션북스, 1998)을 썼는데, 이
책에서 광고에 대한 100가지 주제를 이야기 식으로 풀어갔다. 여기에서 체감이란 가슴으로 느끼고 머리로 깨달아
광고에 진정 눈뜨게 하는 실리적 광고배우기인 체감(體感)의 광고학이자, 광고에 대한 잡것과 헛것이 사라져 몸이
가벼워지고 마음이 시원해지는 체감(遞減)의 광고학이었다. 기존의 광고 바이블들을 해체하고 넘어서며(beyond)
자신만의 이야기를 했던 것이다.
>>최근에
나온 ‘패러다임 사고학’을 감명 깊게 읽었는데요. 살아가면서 패러다임을 바꿨을 때 어떤 변화가 나타나는지에 초점을
맞춰 창의적인 생활을 촉구하고 있어요. 사유의 폭이 넓으신데 광고 창의성이나 크리에이티브 측면에서 어떤 점에 집중할
생각이신지요?
여기에서 패러다임이란 하나의 관점인데 순리적으로 보는 것입니다. 활성화하지 말고 충실화하고, 이미지 메이킹을 하지
말고 가치 수립(value building)을 하자는 것이죠. 광고는 자본주의 사회의 꽃일 수가 있는데 이것을
넓게봐서 생태의 영역에 관심을 기울일 생각입니다. 광고가 물건파는 데만 혈안이 되어 쓰레기 양산을 할 수 있는데,
생태적인 마인드도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봐요. 광고를 그물망 속의 하나의 존재로 보는 것이 생태적 관점이거든요.
앞으로 순리를 하나의 맥으로 엮어가고 싶어요.
>>크리에이티브
맥락에서 생태적 관점이 광고에 어떤 영향을 줄 수 있을까요?
광고를 자본주의의 꽃이라고 하는데 다른 면에서 보면 자본주의의 종일수도 있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물건을파는 데만
혈안이 되면 경제적인 시각에 함몰되는 것이죠. 그런데 에코라는 것은 단순한 환경이 아니라 관계망 속에 하나의 점을
부여하는 것이니까, 넓은 의미에서 지속가능한 광고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요.
>>크리에이티브에서
퍼스펙티브(perspective)로 관점이 변해야 한다는 말씀을 자주 하셨는데, 여기에서 전망이란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지요?
순리에 맞게 넓게 보자는 것입니다. 넓게 본다는 것은 우물 밖 개구리의 사고를 갖는 것이죠. 앨버트로스라는새가
있는데, 지상에서는 초췌해 보이지만 하늘을 가장 멋지게 순항하며 3천2백 킬로미터를 난다고 해요. 가장 넓게 보는
새라고 할 수 있어요. 저는 넓게 봐서 광고가 가장 강력한 마케팅 수단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사실 따지고 보면
가장 비싼 수단일 수도 있고 용이한 수단일 수도 있어요. 돈만 있으면 광고회사 불러서 할 수 있는데 우리가 브랜드
관리를할 때 좀 더 넓은 시각에서 보면 크리에이티브만 중요한 것이 아니라 연속성과 지속가능성이 중요하죠. 순리적으로
접근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동안
쓰신 책에서 ‘생각을 바꾸는 생각’에 대한 내용을 펼치고 계시는데, 아이디어 발상에 대한 두세 가지의 포인트를
말씀해주세요.
우리가 아이디어 발상법이라고 말하는데 저는 아이디어 발상에 대한 방법은 없다고 생각해요(웃음). 중요한 것은 발상법이
아니라 발상력이거든요. 방법에 대한 지식을 알고 창의적인 광고가 나오는 것이 아니라 사고력이 있을 때 창의적인
광고가 나온다고 생각해요. 저는 광고 실무 출신이지만 기획서를 어떻게 써야하고 카피를 어떻게 써야 하는지를 안
가르쳐요. 저는 방법 위주의 실무교육이나 현실성없는이론교육도 다 공허하다고 보고, 생각의 힘을 키우는 사고교육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앞으로
어떤 방향에서 연구를 계속하실 생각인지요?
생태를 기반으로 하는 경제 가치 경영에 치중하고 싶어요. 가치란 이윤을 얻기보다 주는 관점이죠. 그래서 브랜딩
PR의 문제에 관심을 기울일 생각입니다. 브랜딩 PR은 가치를 증식할 수 있는 공중관계이거든요. 기업을 경영할
때, 광고를 만들 때, 광고를 집행할 때, 생태기반의 가치경영 측 면에서 다른 생각을 제안하고 싶어요.
그가 쓴 ‘패러다임 사고학: 뻔한 생각을 넘는 다른 생각’(연세대학교 출판부, 2007)을 보면 생각의 합종연횡과
가로지르기를 통해 사유의 폭을 얼마나 넓혀나갔는지를 확인하게 된다. 이 책에서 그는 공부, 사랑, 생활, 지혜,
건강, 영업, 문화, 생태, 경제, 학문 등 10가지 분야에 10개의 글 꼭지를 써서100가지 생각을 풀어놓았다.
특히, “사회과학도 자연과학과 같이 객관적 방법을 써야 한다.”에서 “사회과학은 자연과학과 달리 주관적 의미를
줘야 한다.”(“사회과학은 엄밀하다고?” 421-424쪽)로 생각을 넘어서야 한다는 대목은 우리 광고학의 나아갈
길을 제시한 탁견이라고 하겠다. 그는 이런 맥락에서 사회 현상을 정확하게 분석하기 위한 사회과학(社會科學)보다
사회현상을 안목 있게 아울러 통찰하기 위한 사회통학(社會通學)의 필요성을 강조했을 터이다.
>>그렇다면
광고 창의성도 넓은 시각에서 생각하실 것 같은데요. 한 마디로 정의하기가 쉽지 않겠지만 광고 창의성이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는지요?
저는 가치 수립(value building)을 하는 것이 창의적인 광고라고 생각해요. 우리는 지금 이미지 메이킹의
시대에 살고 있는데 이미지란 인위적으로 조작된 어떤 결과물이거든요. 가상으로서의 이미지는 허상일 수밖에 없는데
실체적인 바탕이 없이 그냥 광고만 멋있어요. 그런데 가치 수립이란 실체를 쌓아가는 거죠. 지금까지의 마케팅에서는
교환을통한 이윤 창출에 치중했다면 앞으로는 가치가 마케팅의 핵 심입니다. 최근에는 마케팅의 정의에서 교환이라는
말을 안쓰고 관계와 가치라는 말을 쓰고 있어요.
>>그러니까
광고 창의성이란 생활자들에게 가치 있는 그 무엇을 제공하는 것인가요? 생활자의 맥락에서 광고창의성을 어떻게 보시는지요?
차별화된 가치가 있다는 것을 알리는 것이 중요하죠. 실체 없이 만들어지는 크리에이티브는 무의미해요. 가치를 제공하는
광고가 진정한 크리에이티브입니다. 얼마 전에 이런 말이 딱 떠올랐어요. 우리가 ‘무엇을 말할 것인가(What to
say)’를 전략이라고 하고 ‘어떻게 말할 것인가(How to say)’를 크리에이티브라고 하는데, 광고에서 중요한
것은 어떤 브랜드가 생활자들에게 ‘무엇이 되느냐(What to be)’라고 봐요. 무엇이 되느냐가 광고에서 잘
표현되었으면 그것이 광고 창의성이죠. 무엇을 생활자에게 주는지가 중요해요. ‘무엇이 되느냐’의 문제를 분명히 가지고
있을 때, ‘무엇을 말할 것인가’도 순리적으로 나온다고 생각해요.
>>그렇다면
‘무엇이 되느냐(What to be)’를 분명히 제공하면, 생활자에게 더 가깝게 다가가는 광고 표현이 가능하다고
보시는지요?
광고에 ‘무엇이 되느냐’가 있을 때 생활자들에게 충실한 가치를 줄 수 있어요. 그래서 저는 이미지 메이킹을 하기보다
밸류 빌딩에 충실하자는 것인데, 어떤 브랜드가 되고 어떤 가치를 줄 것인지에 대한 내용이 안에서 차오르면 나중에
흘러넘치는 거죠. 크리에이티브 역시 인위적으로 만들어 지는 것이 아니라 흘러 넘쳐지는 것이라고 봐요. 그래서 광고
창의성이란 겉을 꾸미는 것이 아니라 속을 가꾸는 것이라고생각해요. 속을 제대로 가꾸다보면 언젠가는 생활자들에게
흘러넘치게 됩니다. 광고 크리에이티브도 알고 보면 결과의철학이 아니겠어요? 예컨대 입소문 마케팅이라고들 하는데,
입소문이라는 것도 억지로 만들려고 해서 만들어지는 것이아니거든요. 밸류 빌딩에 충실하다 보면 저절로 흘러넘쳐서
입소문이 나게 돼요.
그가 생각하는 광고 창의성의 개념은 ‘가치의 축적’이다. 어떤 브랜드의 가치는 생활자의 마음속에 ‘무엇이 되느냐’,
다시 말해서 어떤 의미로 남느냐에 따라 정해지며, 광고 창의성의 수준에 따라 브랜드 가치가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세상에서 가장 쓴 광고책’(커뮤니케이션북스, 2002)에서 순간적으로 반짝이는 크리에이티브의 파티는 끝났다며
다함께 쓰디쓴 독배를 들자고 한 바 있었다. 이 책에서 그는 전망의 통찰력(perspective insight)을
강조하며 “거시적 시각이란 통이 큰 것이 아니라 작은 것도 큰 틀에서 볼 수 있는 힘”이라고 강조했다.
광고 창의성 역시 ‘튀는’ 아이디어의 관점에서 평가하기보다큰 틀에서 브랜드 가치를 제고하는 전망적 시각에서 봐야
한다고 하였다. 당연한 귀결이겠지만 ‘촌스럽게도’ 그는, “할머니~ 어디가세요?”, “어디 가긴 보령약국 가지.”
하는 종로 5가의 보령약국 라디오 광고를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광고로 소개한 적이 있었다(광고정보 2005년 12월호).
여기에서도 광고 창의성에 대한 그의 생각을 읽을 수 있는데, 다시 말해서 반짝이는 크리에이티브가 아닌 지속가능한
아이디어가 진정으로 브랜드 가치를 제고할 수 있다는 것이다.
박기철의 명함에 새겨진 그의 주소는 다음과 같다. “순리도(順理道) 생기군(生氣郡) 낙관읍(樂觀邑) 108 조감(鳥瞰)
빌딩 8층 805호.” 순리에 따라 생기 있게 낙관적으로 세상을 조감하며 살자는 자신의 인생관을 나타낸 것이리라.
종횡무진 가로지르는 글쓰기를 통해 사회과학에 인문학적 밑거름을 주어 사회통학(社會通學)으로 바꾸고 있는 그의 통찰력은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우리 광고학계에값지고도 소중한 정신이다. 2007년 제주도에서 열린 제25차
아시아 광고대회의 슬로건이 ‘비욘드(beyond)’였는데, 그전부터 벌써 그는 기존의 낡은 관념과 방법들을 해체하고
넘어서자며 소박한 즐거움(素樂)으로 이야기하지 않았겠는가. “마이~ 마이~ 마이~ 딜라일라~” “마이~ 마이~
마이~ 웨이~” 정녕 자기만의 길을 만들어 나갈, 그의 노랫소리가 귓가에 쟁쟁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