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광고 메시지가 상품에 활력을 불어넣는 유기체가 되지 못하면 정말로 무의미하다는 지론을 갖고 있다. 광고란 흘러가기 때문에 소비자와 작용과 반작용을 거치면서 메시지 토킹(message talking)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새로운 발견’으로서의 임팩트가 없는 광고 역시 그냥 물처럼 바람처럼 흘러가버리기 때문에, 광고 창작자는 언제나 생활의 발견을 통해 자기만의 색깔로 대상을 해석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최진수는 그동안 약 300편의 텔레비전 광고를 찍었다. 자신이 창작에 참여한 광고들에 언제나 다른 옷을 입히려고 노력했으며, 상품을 살아있는 유기체처럼 제시하려고 상상력을 발휘했다. 그리고 제작 전 회의(PPM)의 중요성을 누누이 강조하며 사전 회의를 통해 표현의 완성도를 높이는 것이 광고 창작의 기반을 닦는 바탕이 된다고 보았다. 따라서 현장에서 대충 찍고 나중에 합성해서 완성도를 높여나가는 제작관행을 극도로 싫어했는데, 이와 같은 그의 태도는 보다 창의적인 결과물을 도출하는 에너지로 작용했으리라.
>>그동안 이런저런 좋은 광고를 많이 만드셨는데, 특히 썬키스트 훼미리주스의 “오렌지 이외는 아무것도 넣지 않았습니다.”라는 ‘믹서’ 편이 기억납니다. 단순 명쾌한 메시지가 표현의 핵으로 작용했었죠.
저는 사람의 운명론적 요소를 약간 믿어요. 썬키스트 훼미리 주스는 해태음료의 간판 브랜드였으니까 그때까지는 빅 모델을 계속 써왔는데, 모델한테 어떤 사고가 있었어요. 소송 이야기가 나와 모델을 빼고 제작해달라는 주문이 들어왔어요. 타사를 비방하면 안 되겠지만 그때 델몬트가 95%의 원액을 썼고 썬키스트는 100%였으니까 100% 원액을 강조할 필요가 있었어요. 직접비교를 못하던 시절에 과장이나 포장은 하지 말고 진솔하게 소비자에게 다가간다는 정도로 정해놓고 아이디어를 짜는데 무지하게 어렵더라고요. 심플할수록 어렵잖아요. 제품 하나로 아이디어를 내니까 사람들은 아이디어도 아니라고 했지만 저는 확신했어요. 과대 포장된 광고가 많기 때문에 오히려 임팩트 있게 만들면 더
좋은 반응이 있을 것으로 보고 사운드에 굉장히 집중했어요.그래서 당시 김대중 음악감독하고 녹음실을 네 번이나 옮겨다녔어요.
>>소리 만들기란 정말 어렵잖아요. 특히 오렌지 껍질 벗기는 소리를 만들어내기가 정말 어려웠을 텐데요.
네. 음악 없이 중간에 몇 가지 사운드 이펙트로만들어가는데, 김대중 음악감독하고 네 번째로 만났을 때 비로소 그 소리가 났어요. 마지막에 애가 마시는 장면이 있는데 마시는 것보다 믹서에서 제품으로 바뀌는 것을 두세 번 더 보여주고 싶었지만 광고주를 설득하는 데는 실패했어요.
>>오래전에 ‘신 대우가족’ 캠페인을 진행하여 당시 많은 화제를 유발했는데, 드라마형 광고의 핵심 문법이자 묘미란 무엇일까요?
당시 삼성전자는 휴먼테크를 강조하고 금성전자는 테크노피아를 내세웠는데, 업계에서는 대우전자를 2.5사 라고 했어요. 좋게 말해서 가전 3사였지 너무나 차이가 많이 났어요. 대우전자가 소비자에게 인정을 받으려면 대우 제품도 괜찮다는 신뢰도와 친숙도가 있어야 했는데, 다른 회사에서 너무 테크놀로지 쪽으로 가니까 우리는 사람냄새 나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어요. 큰 배경은 그렇고 한 달에 한 편 씩해서 13편을 만들었거든요. 제가 직접 아이디어를 짰는데, 윗분들이 드라마 작가들하고 작업해보라고 권해서 김수현 씨도 만나보고 주찬옥 씨와 작업도 해봤지만 역시 광고와 드라마는 차이가 있어요. 옛날에 이장호 감독도 대마초 사건 때 광고를 만들었는데 2분까지 줄여놓고 가셨더라고요(웃
음). 그분들이 드라마에 새로움을 줄 수는 있겠지만 광고적이지 않아 같이 하지 못하고, 결국 제가 직접 써 가면서 만들었었죠. 광고와 영화나 드라마는 좀 달라요. 아무튼 매달 한편 씩 새로움을 전달해 줄 수 있어서 보람이 있었어요. 마지막 장면을 항상 궁금하게 만드는 것이 드라마형 광고의 관건입니다.
우리의 주변에 모래알처럼 흩어져 있는 것을 누가 먼저 발견해서 퍼오고 만드느냐가 중요합니다. 자꾸 생활주변에 관심을 가져야 하고 특히 사람에 관심을 쏟아야 합니다. 새로운 발견과 새로운 느낌을 주지 못하는 영상은 영상이 아니니까요.
>>흔히들 영상광고에서 임팩트가 중요하다고 하는데, 임팩트란 결국 무엇일까요?
저는 임팩트란 새로운 발견이라고 봐요. 정말로 새로운 발견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종이컵으로 커피를 마셔봐야 임팩트가 없지만, 시위나 집회에서 종이컵에 촛불을 밝혀거리를 행진하면 임팩트가 생기잖아요. 이것이 생활의 발견인데, 하이마트 광고나 대우전자 탱크주의 광고에서도 새로운 발견만 있으면 임팩트가 가능하다고 봤어요. 전혀 엉뚱한 데서 끄집어 온 것이 아니라, 바로 우리의 주변에 모래알처럼 흩어져 있는 것을 누가 먼저 발견해서 퍼오고 만드느냐가 중요합니다. 그러니까 자꾸 생활주변에 관심을 가져야 하고 특히 사람에 대한 관심이 많아야 합니다. 새로운 발견과 새로운 느낌을 주지 못하는 영상은 영상이 아니니까요.
그는 영상광고 창작에서 임팩트의 중요성을 강조했는데, 광고에서의 임팩트란 자극적인 영상으로 소비자의 시선을 끄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발견’으로 소비자의 공감을 유발하는 감동적인 메시지를 의미할 것이다. 그는 대우전자 ‘탱크주의’ 캠페인으로 1993년 한국방송광고대상 대상을 받았고, 썬키스트 훼미리주스의 ‘믹서’ 편으로 1996년 대한민국광고 대상 대상과 1997년 칸느 광고제 파이널리스트에 올랐다. 또한, 하이마트 캠페인으로 2002년 대한민국광고대상 대상을 받았으며, 현대증권의 ‘아름다운 세상 만들기’ 캠페인으로 2003년 소비자가 뽑은 좋은 광고상 대상을 수상했다. 이밖에도 여러 수상작들이 있는데, 이는 한 편을 만들 때마다사람에 대한 관찰의 결과를 임팩트 있게 표현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아이디어 단계에서 리뷰를 할 수도 있고 전략 단계에 서 리뷰를 할 수도 있을 텐데, 크리에이티브를 평가할 때 어떤 기준으로 보시는지요.
첫 번째는 크리에이티브 측면에서 왜 그 아이디어가 나왔느냐를 물어봐요. 저도 실무에서 일할 때는 광고주에 대한 스크랩을 모두 다 했어요. 기업의 문제들을 계속 체크하다보면 해야 할 메시지가 나와요. 광고주로부터 오리엔테이션 받는 것만으로는 한계가 있으니까 얼마나 관심을 갖느냐에 따라 크리에이티브의 깊이가 다를 수밖에 없어요. 그래서 전 늘 아이디어나 작업물의 배경을 물어봐요. 이 아이디어 누가 냈냐? 왜 이런 아이디어를 냈어? 그러면 그 근간이 나와요. 저는 겉으론 반짝반짝하지만 깊숙이 보면 아무것도없는 그런 아이디어는 소비자들이 눈치 챈다고 봐요. 광고하면서 철학까지 말하면 어떻게 받아들일지 모르겠지만 광고하려면 철학이 있어야 하고 공부를 많이 해야 합니다. 그래서 저는 직원들한테 쓸데없이 사무실에 않아 있지 말고 비오면 빗속도 걸어보고 하면서 자기만의 경험과 공부를 하라고 그래요. 광고인들이 자신의 철학에 책임감을 갖는 자세가 중요해요.
>>또 다른 기준은 무엇입니까?
두 번째는 당연히 크리에이터가 광고 전략을 얼마만큼 이해하고 있느냐를 봐요. 크리에이터가 원하는 것이 무엇이며 광고 전략을 어떻게 해석했는지, 설득시킬 다른 방법은 없는지 아니면 그냥 맞춰주는 것인지 알아내는 것이 중요해요. 광고 감독을 할 때나 지금이나 언제나 저는 광고에 사람 냄새가 나야된다고 생각해요. 사람이 튀면 기업도 튀고 물건도 튀고 다 튀게 되는데, 튀어도 사람이 튀어야 해요. 그래도 무작정 튀면 금방 티가 나요. 사람이 움직여야죠. 광고에 사람이 없으면 존재의 이유가 불투명해져요.
>>평소에 생각하시는 좋은 크리에이티브란 어떤 것인지 설명해 주신다면.
커뮤니케이션하는 분들은 사회적 책임이 중요한데, 이런 면에서 크리에이티브의 독특성을 살리려면 진솔해야 합니다. 진솔한 이야기를 바탕으로 자기 나름대로의 독특한 문법이 나와야지 재주를 부리는 것만으로는 부족해요. 좋은 인생관이나 철학이 있는 사람만이 훌륭한 크리에이티브를 만들 수 있겠지요. 지나고 보면 모든 광고는 다 흘러가요. 광고 한 편을 3개월 틀거나 6개월 틀거나 길게는 1년 틀지만, 지나고 나서 보면 진솔한 이야기를 소비자 심리에 연결한 메시지만 그래도 살아남아요. 그렇기 때문에 광고는 진솔해야 하며 재주만 가지고 소비자에게 나쁜 영향을 미치는 광고를 만들면 안 됩니다.
>>진솔한 메시지가 생명력이 길다는 말씀이신데, 그렇다면 광고 창의성이란 결국 무엇일까요?
저는 메시지 토킹(message talking)을 하는 사람이니까 광고 길이가 길건 짧건 살아 움직이는 유기체 같아야 한다고 봐요. 메시지가 살아 움직여야 합니다. 어차피 세상은 액션과 리액션으로 이뤄지는데, 광고도 소비자에게 메시지 토킹을 하면 반응이 있어야 해요. 반응이 없는 것은 죽은광고나 마찬가지니까, 어떻게든 살아있는 유기체 같은 메시지를 만들어야 합니다. 더 바란다면 인간에 대한 철학이 깊이 깃들어 있으면 좋겠어요. 아무리 잘 팔려도 이상한 제품이 잘 팔리면 안 되지 않습니까? 광고인들도 브랜드에 대한 애착이 강한 것도 있고 덜한 것도 있잖아요. 그래서 잡을 것은 확실히 더 잡아야 해요. 아무튼 이런 저런 맥락에서 볼 때, 광고 창의성이란 메시지를 살아있는 유기체처럼 만드는 것이며, 이때 중요한 것은 전달하는 파워라고 할 수 있어요.
>>메시지 안에 힘이 있어야 하고 그냥 스쳐 지나가면 절대 안 된다는 말씀이네요.
안 되죠. 그래서 튀어야 한다는 말도 있겠지만 잔잔하게 표현한다고 해서 안 된다고는 보지 않아요. 오히려 고요한 침묵이 더 강할 수도 있고, 이 또한 메시지의 파워라고 할 수 있어요. 예를 들어, 15초 동안 한 마디만 하고 끝나는 광고도 사람을 깊숙이 관찰한 끝에 나올 수 있는 아이디어지 대충대충하면 나올 수 없어요. 광고 안에 들어있는 전략도 자연스럽게 설명되는 아이디어가 좋겠지요.
>>윌의 초창기 때 저에게 보내온 초대장이 기억납니다. 그때 “Will’s Will”이라는 헤드라인이 있었는데, 광고회사 윌의 의지나 희망을 말하는 것이겠죠.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끌고 갈 계획이세요?
요즘 그 때문에 고민이 많아요. 외국 광고회사에서 함께 하자는 말도 계속 오가는데 처음에는 외국계와의 합작은 생각지도 않고 정말 독립광고회사로 가는 ‘독립정신’, 그런 생각을 많이 했어요. 지금은 시대가 많이 변했고 우리도 살아나야 하니까 광고회사의 외형도 무시할 수 없더라고요. 광고회사를 이끌어가며 10위권 안으로 진출하기 위한 여러가지 방안을 모색하고 있어요. 다만, 직원들의 다양성을 존중하면서 깊이 있고 사람 냄새가 나는 광고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은 한결 같습니다.
그는 사람들의 다양성을 존중하면서 사람냄새 나는 광고를 만들고 싶어 했다. 지금은 직접 광고를 만들지는 않고 경영자의 입장에서 광고와 사회를 바라보지만, 그동안 배운 도둑질이 영상광고 창작인데 그 창작열을 쉽게 잠재울 수는 없으리라. 그가 생각하는 광고 창의성의 개념은 메시지를 ‘살아있는 유기체로 만들기’이다. 즉, 광고란 흘러가기 때문에 소비자와 작용과 반작용을 거치면서 메시지 토킹(message talking)을 해야 한다는 뜻이다. 광고 메시지가 상품에 활력을 불어넣는 유기체가 되지 못하면 정말로 무의미하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또한, ‘새로운
발견’으로서의 임팩트가 없는 광고 역시 그냥 물처럼 바람처럼 흘러가버리기 때문에, 광고 창작자는 언제나 생활의 발견을 통해 자기만의 색깔로 대상을 해석해야 한다는 것이다. 금세기 일본을 대표하는 지식인이자 문예비평가인 가라타니 고진(柄谷行人)은 ‘풍경이란 언제나 그 자리에 그저 있을 뿐 방문객에 의해 발견되는 것’이라고 말한 바 있거니와, 나역시 인터뷰를 하며 그의 마음속으로 놀러갔다. 방문객이 되어 찾아간 그의 내면에는 풍경화 한 폭이 저만치 강렬한 빛깔로 머물러있었다. 그의 내면은 저녁노을처럼 붉게 타오르고 있었다. 언제적부터 있었을 그 풍경에서, 열정이 지나쳐 불온해보이기까지 하는 어느 광고 창작자의 즐거운 인생을 발견하는 즐거움을, 나는 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