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회사 프로듀서에서 광고감독으로, 광고감독에서 다시 영화감독으로 그리고 다시 광고 감독으로 돌아와 이제는
광고회사 커뮤니케이션 윌의 살림을 책임지고 있는 최진수 사장은 영상의 영토를 종횡무진 누벼온 ‘문제적 개인’이다.
변화무쌍한 세계 속에 내던져져 자신의 운명을 알지 못한 채 좌충우돌하며 자기 길을 찾아 떠나는 파우스트처럼, 그
는 때로는 잠입하고 때로는 탈주하며 늘 영상의 국경선에 서 있었다.
국내 CM 플래너를 대표하는 이강우 선생은 텔레비전 광고라는 명칭으로는 현대의 광고영상과 매체를 설명하기에 한계가 있다며 앞으로는 ‘영상 광고’라는 말을 써야 한다고 주창한 바 있었다. 그의 예측은 정확히 들어맞아 이제 영상 문화는 텔레비전이라는 매체의 틀에 국한되지 않고 휴대폰과 인터넷 등 다양한 매체의 경계를 넘어서고 있다. 그렇다면 영상의 넘나듦과 가로지르기를 체험적으로 증언할 적임자는
누구일까? 광고회사 프로듀서에서 광고감독으로, 광고감독에서 다시 영화감독으로 그리고 다시 광고감독으로 돌아와 이제는광고회사 커뮤니케이션 윌의 살림을 책임지고 있는 최진수(1957~) 사장은 영상의 영토를 종횡무진 누벼온 ‘문제적 개인’이다. 변화무쌍한 세계 속에 내던져져 자신의 운명을 알지 못한 채 좌충우돌하며 자기 길을 찾아 떠나는 파우스트처럼, 그는 때로는 잠입하고 때로는 탈주하며 늘 영상의 국경선에서 있었다. 광고와 영화의 관계는 어떻게 될까? 먼저 하이마트 광고 이야기부터 들어보자.
>>저는 아이디어가 잘 나오지 않을 때 패러디 광고를 만든다고 생각하는 편인데, 하이마트 광고를 보면서 생각이 달라졌어요. 언론에는 오페라 광고라고 나오지만노래를 패러디했다는 점에서 하이마트 광고를 패러디 광고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아요.
분명히 패러디가 아니죠. 처음에 하이마트 광고를 맡아 아이디어 회의를 하면서 누군가가 그냥 패러디 스타일로 가자고 했으면 진행하지 않았을 거예요. 똑같은 일도 단어의 차이가 큰데 오페라 광고를 하자고 해서 처음 2년간은 세계의 명작 오페라를 활용했어요. 오페라의 틀에도 여러 갈래가 있는데 그것을 우리 정서에 맞게 신파조로 만들었죠.
신파조는 영화에서도 여전히 통용되는 스타일이에요. ‘별들의 고향’부터 최근의 최루성 멜로 영화까지 형태만 다를 뿐이지 흥행이 됩니다. 대중이 빨려 들어오고 인정을 해요.
>>이장호 감독의 ‘별들의 고향’(1974)에서는 “오랜만에 옆에 누워 보는군~.”, “추워요. 꼭 안아줘요.”라는 대사가 유명했지요.
맞아요. 그 몇 마디 대사 때문에 대중들이 뻑 가는 거죠. 그래서 오페라를 우리 정서에 맞게 바꿔 신파조로 만들었는데, 광고가 나가자 주변에서 그렇게 촌스러운 광고를 만들었냐며 대단했어요. 그래서 제가 좀 기다려보자고 했어요. 지금은 ‘서동요(薯童謠)’를 대단히 역사적인 의의가 있는 노래라고 생각하지만 사실 당시에는 여자 꼬시는 노래였잖아요. 마찬가지로 그때만 해도 하이마트 브랜드 인지가 많이 안 됐을 때니까 가장 친밀감 있게 알리는 차별적인 방법으로 오페라 광고를 선택한 거죠. 패러디는 어디 있는 것을 차용하지만 CM송은 하나의 표현 장르니까 오페라 형식을 도입했다고 해서 절대 패러디라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굉장히 오랫동안 오페라 CM송 형식을 유지하셨는데 광고주를 설득하는데 어려움은 없으셨는지요?
많았어요. 회의할 때나 콘티를 제시할 때마다 다른 것을 해보자는 말이 나왔지요. 그런데 하이마트 사장님께서 한국광고 중 한가지 캠페인으로 가장 오래 간 것이 몇 년이냐고 해서, 다시다의 ‘고향의 맛’이 20년 이상 되었다고 했죠. 제 대답을 듣고 나서, 기업은 수시로 바뀌는 모습보다 일관성이 있는 게 신뢰 아니겠냐며 장기적으로 끌고 갔으면 좋겠다고 몇 번을 말씀하시고, 그러다보면 내부, 외부에서 이런저런 저항이 있을 텐데 이겨낼 자신이 있느냐고 해서, 자신 있다고 했지요. 그랬더니 사장님께서 할 때마다 좀 새롭게 보여줄 수가 있겠느냐고 다시 물어, 걱정 마시라고 해 지금까지 왔습니다.
영화와 광고의 가장 근본적인 차이점은 주문 제작이냐 아니냐 하는, 만든 사람의 정서 차이죠. 광고감독은 광고주의 속성을 잘 이해해서 그 기업이 원하는 것을 만들어줘야 하는데, 영화는 어떤 사람이 가지고 있는인생관과 사회관이나 철학을 대중들에게 전파하려는 겁니다.
>>어떤 광고 창작자는 저에게 하이마트 아이디어는 참 쉽게 내겠다고 그래요. 저는 쉬우면서도 굉장히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익숙한 노래에 다름과 새로움을 줘야한다는 점에서 쉽지 않을 테니까요. 새로운 소재를 찾는데 가장 주안점을 두었던 것이라면?
음악이죠. 우리 PD들 자리에는 노래 책자가 많은데 이제까지 수 천 곡 중에서 선곡을 해왔어요. 아이디어를 내기 전에 쉽고 재미있고 대중적인 음악을 먼저 찾아요. 디지털 제품에는 젊은 감각의 노래를 맞추고, 30~40대를 겨냥한 백색가전 쪽은 전 국민이 다 아는 옛날 노래를 편곡해요. 리뷰하기 전에 실무자 앞에서 노래를 같이 불러본 다음, 괜찮은 것을 골라 음악 감독과 함께 만들어요. 남들은 쉽게 봐 도 기본 아이디어에 접목하기가 멋있는 영상 만들기보다 쉽지만은 않아요. 속된 말로 언니 오빠도 모르는 그림 만들기가 얼마나 쉬워요? 그렇게 하려면 광고가 아닌 순수 예술을 해야죠.
순수 예술이라…. 그는 광고감독으로 일하던 도중 영화 ‘헤어드레서’(1995)를 연출하게 된다. 국민배우 안성기가 ‘앙리 박’이라는 이름의 헤어드레서로 출연한 이 영화는 흥행에서는 다소 아쉬움을 남겼지만 영상 미학과 제작 기법 면에서 두루 화제를 낳았다. 새로운 영상의 영토에 창의적으로 도전한 그를 ‘문제적 개인(problematic individual)’이라고 부른데는 이유가 있다. 일찍이 미학자 루카치는 근대소설의 주인
공을 ‘문제적 개인’이라 지칭하며, 알 수 없는 세상에 혼자 내동댕이쳐져 세계와 대결하며 자아와 세계의 간극 사이를 방황하는 영혼으로 보았다. 그 역시 광고 미학과 영화 미학 사이의 간극을 경험하며 늘 방황했기 때문이다.
>>지금 예술 말씀을 하셨는데 영화라는 장르가 대중예술이기는 하지만 광고에 비해 순수예술에 가깝다고 할 수 있어요. 어떻게 해서 영화를 찍게 되었는지요?
‘헤어드레서’를 찍을 무렵 당시 영화계는 계속 새로운 사람들을 필요로 했어요. 기존의 충무로 세대들하고 차별화되는 요구를 많이 했죠. 그때 리더 그룹이 신씨네였는데 거기에서 최고의 대우를 해주겠다고 제안이 왔어요. 저는 영화가 길다는 면에서는 별 어려움이 없었어요. 대학 다니며 실습 영화나 조감독 생활을 해봤고 드라마 하면서 90분짜리도 만들어 보았기 때문에 일반 CM 감독들하고는 달랐던 거죠. 연극 연출도 해봤기 때문에 인물 연출에도 큰 어려움이 없었는데, 다만 코래드에 있어서 무지하게 힘들었어요. 제가 신씨네에서 영화를 했더라면 크게 성공했을 거라고 생각해요.
>>기존의 영화 스타일에 비해 감각적인 영상이었고 광고적 구성이 많아요.
네. 어쩔 수 없이 들어가요. 스태프들이 굉장히 고생했어요. 그 무렵의 영화감독은 스토리텔링 이어주는 사람이고 아트워크는 스태프들이 다 했는데, 우리 습성에 그게 됩니까? 당시 영화계에서는 PPM이란 단어가 없었고 콘티도 없이 대본에 표시해서 찍었어요. 그럴 때 제가 600컷을 그려서 슬라이드로 만들어 PPM을 하자고 하니까 PPM이 뭐냐 그래요. 대강당에서 50~60명 정도 모아놓고 안성기 씨 같은 배우들
앞에서 “여기서 대사 이렇게 치고~” 하면서 PPM을 했는데, 영화계에서 난리가 났어요.
>>그래서 할리우드 시스템이라는 말이 나왔겠고, 그렇게하면 영화판이 뒤집어진다는 비판이나 비아냥거림도 있었겠네요.
그래서 촬영할 때 어떻게 찍는지 궁금했는지 당대의 톱 감독들이 다 왔어요. 그때는 모니터 보고 찍는 영화감독들이 없었어요. 우리는 습관이 돼서 모니터 없이는 못 찍는데, 저는 오히려 그분들이 존경스럽더라고요. 당시 영화 개봉전 일간지에 영화 제작기법에 대한 내용이 단일 영화로서는 가장 많은 150번 이상 소개되었어요. 그 후로 물량적으로 뒷받침이 안 되면 영화 촬영이 어려워지는 시대가 되었고 충무
로에 양질의 금융자본이 들어오기 시작하더라고요.
>>길이의 차이는 별 문제가 안 된다고 하셨는데, 광고와 영화는 미학의 차이가 분명히 있어요. 영화감독인 제친구는 고작 15초 가지고 2시간한테 덤비지 말라고 그래요. 공통점도 있고 차이점도 있을 수 있는데, 광고와 영화의 차이에 대해 말씀해주세요.
영화와 광고의 가장 근본적인 차이점은 주문 제작이냐 아니냐 하는, 만든 사람의 정서(mentality) 차이죠. 광고감독은 광고주의 속성을 잘 이해해서 그 기업이 원하는 것을 만들어줘야 하는데, 영화는 어떤 사람이 가지고 있는 인생관과 사회관이나 철학을 대중들에게 전파하여 잘 먹히거나 따라오면 크게 인정받지만 인정을 못 받으면 멀어져요. 그때 평론가들은 ‘헤어드레서’가 너무 빠른 영화라며 한 5년만 늦게 나왔어도 굉장히 히트했을 거라고 평했지요.
>>당대의 시대정신을 바탕으로 감각의 주파수를 맞추는 것이 영화 미학의 관건이겠네요.
너무 빨랐어요. 아트워크도 그렇고 외국영화를 본듯한 착각을 한대요. 그런데 우리나라 배우들이 나오니까 약간 덜 떨어진 생소한 느낌을 받은 거죠. 스토리텔링도요. 저는 작가로서 인정받고 싶어서 영화를 했지 관객들의 입맛에 맞는 작품을 하려고 하지는 않았어요. 세상 사람들의 진실과 거짓에 대한 관습을 파헤치고 싶어서 만들었어요. 안성기 씨 캐릭터는 진실과 거짓의 교차점에 딱 어울렸어요. 작품속에서 안성기 씨는 프랑스에서 최고의 미용학교를 나온 수석 헤어드레서인데 실제로는 개 미용사예요. 개털을 깎는 사람이 십만 원을 받고 머리를 깎으면 더 잘 팔리는 병리적 현상을 풍자하는 이야기를 그때 하려고 했어요.
>>어떻게 해서 아이디어가 나왔는지요?
당시에 찰리 정이라는 헤어드레서가 유명했는데, 애경 썬실크 샴푸 광고의 모델이었어요. 그래서 그 광고를만들려고 미용실에도 가보고 전화도 직접 해보고 그랬어요. 당시만 해도 남자들이 미용실에 앉아있으면 이상한 취급을 받던 때였어요. 그런데 돈을 엄청 번 찰리 정이 이화여대 앞 헤어숍에서 머리자르다 실수로 손님으로 온 대학교수의 귀를 자른 이야기가 신문 가십 란에 났었어요. 그렇게 머리 잘 자르는 사람이 귀를 자르다니, 너무 웃겨서 테마를 그쪽으로 옮겨서 영화로 만든 거에요.
그가 보기에 광고와 영화는 길이의 차이라는 외형적인 형식 외에 어떻게 접근하느냐 하는 정신적 경향성(mentality)에서 차이가 분명히 드러난다. 이는 그가 예술 장르에서 아름다움과 추함 그리고 미적 완결성의 원리를 감각적으로 체득 했으면서도, 광고 창작에서는 광고주의 요구 사항을 충실히 반영하는 범위 내에서 재주와 미적 감각을 발휘해야 한다는 광고 창작의 태생적 한계를 적시하는 발언이다. 그는 영화와 광고는 영상 미학에 접근하는 창작 정신과 영혼의 울림이 달라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한 셈이다.
>>그동안 국내외 광고제에서 상도 많이 받으셨고 나름대로 한 칼 있다고 인정받아 지금은 광고회사 대표가 되셨습니다. 비교적 성공한 광고인이라고 할 수 있는데,아직도 영화에 대한 미련과 집착이 있으신지요?
지난 2002년에 영화 ‘피아노 치는 대통령’에 제작자로 참여했어요. 아시다시피 한국 광고계가 워낙 타이트하니까 정말 정신이 없어요. 저에게 미련이 있느냐 없느냐보다 더 중요했던 것은 회사를 처음 만들면서 커뮤니케이션 윌의 네트워크를 좀 더 미래지향적으로 만드는 것이었어요. 거기에 영화사도 있고 말이죠. 그런 꿈의 일환으로 ‘피아노 치는 대통령’을 비즈니스 측면에서 연결하는 작업을 했었죠. 아직
도 제가 가지고 있는 시나리오가 많은데 지금은 시간이 없으니까 한 편을 후배 영화사 사장한테 줬어요. 그 영화는 아마 내년에 그 친구가 작업을 할 테고, 우리는 독립광고회사니까 저희만의 크리에이티브 틀을 만들어 나가는 것이 지금은 더 시급합니다.
>>제가 왜 이런 질문을 드리느냐 하면, 광고계에서 상당히 성공한 사람이라도 순수한 인간 최진수로 돌아가면 아무것도 없다고 느낄 수 있잖아요. 그리고 예술을 하려했던 사람은 나이 70을 먹어서도 방황하는 청춘이 될 수 있어, 그런 허전한 마음이 있나 싶어서요.
맞는 말씀이기는 한데, 현실과 타협하자는 말이 아니라 저는 매사에 때가 있다고 봅니다. 사람이 좋은 일을 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기회도 넓어지겠지요. 개인적으로는 한 60살 정도 넘어가면 장예모(張藝謨) 감독처럼 오페라 연출을 해보고 싶어요. 왜냐? 안 해본 것이니까요. 태어나서 해보고 싶은 거 다 해보고 싶지만, 그렇다고 해서 지금 이 순간을 등한시하면 안 돼요. 광고회사에 틀이란 것이 정해져 있지 않기 때문에 그런 기회들이 자연스럽게 오겠지요. 의도적으로 하려고 하다보면 부작용도 생기는데, 모든 일에는 다 어떤 운명론적인 측면이 있어요.
그가 운명론을 말하는 순간 영상 드레서라는 말이 떠올랐다. 그가 영상을 다듬어 온 것 역시 어떤 보이지 않는 운명적인 선택이었을 터. 제작 당시에는 최고의 감각을 지향했을 모든 영상도 10년이 지난 시점에서 보면 퍽 촌스러운데, 이는 영상이란 마치 머리카락 자라듯이 감각을 먹고 자란다는 방증이다. 헤어드레서가 당대의 헤어스타일에 어울리게 가위질을 해야 하듯이, 영상 드레서 역시 시대감각을 창조하는 영상
스타일을 다듬어야 영원한 현역으로 살아남는다. 그는 그동안, 연극, 드라마, 광고, 영화 등 영상과 관련된 다양한 영역을 넘나들며 감각의 가위질을 해댔는데, 이는 오랜 세월 헤어스타일을 다듬듯 영상을 창조해온 그만의 세계를 나타내기에 족하다. 그는 60대 이후에 오페라 연출을 하고 싶어 했는데, 이 역시 영상 드레서로서 새로운 스타일을 찾기 위함일 터이다. 어쩌면 유준상과 김현수를 모델로 내세워 2002년부터 진행한 오페라 광고에 이미 씨앗 하나가 뿌려졌을지도 모른다. 베르디 오페라 ‘리골레토’ 제3막의 아리아인 ‘여자의 마음’이 하나의 가능성이 아니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