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에이티브의 길을 묻다
사람냄새 나는 격 있는 메시지
김병희 (서원대학교 광고홍보학과 교수 - kimthomas@hanmail.net) 출처 : 광고정보 | 사진 박정훈
그는 멋있는 광고보다 격(格) 있는 광고를 강조한다. 맛있는 광고나 멋있는 광고가 한번 볼 때는 매력적이지만 깊은 맛은 없는 광고라면, 격 있는 광고란 볼수록 감동이 커지고 오래오래 기억되는 그런 광고일 것이다. 김치로 비유하 자면, 멋있는 광고가 막 담근 겉절이 맛이라면, 격 있는 광고란 묵은지나 동치미 국물에 가까울 터이다. 격 있는 광고란 그 저변에 인류의 보편적 가치가 상품 메시지로 녹아 사람의 향기를 풍길 때 가능한 일이다.

그가 앞으로 광고 창작자가 된다면 정말로 늦깎이로 광고 창작을 하는 셈인데, 두고두고 지켜볼 일이다. 어쨌든 지금 이 시점에서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그가 평소 광고 창의성 향상을 위하여 어떤 노력을 하고 있으며, 어떤 기준으로 창의적인 광고를 평가하느냐의 문제일 터이다. 그는 지금 만년을 향해 달려가고 있지만 아직도 꿈이 있는 한 다시 유년시절로 돌아갈 수 있으리라. 행복한 유년기로 돌아가는 데에 나이도 상관없고 너무 늦은 때란 없기에.

>>평소에 창의성 향상을 위해 어떻게 노력하시는지요?
제가 술 잘 먹고 그래서 남들은 설렁설렁하게 볼지 모르지만 생각보다 굉장히 섬세해요. 엄청스레 이중적인 놈인데, 어떤 노력을 하냐면 신문 독서 면을 보다가 관심 있는 교양서나 예술서가 나오면 메모해서 거의 사 봐요. 하루에 신문을 여덟 개 보는데 그 중에 비주얼 좋은 것은 무조건 스크랩해요. 그 다음에 잘못된 사례나 좋은 사례를 다 스크랩하는데, 잘못된 것은 잘못된 대로 공부할 게 있어요. 그리고 전국의 전시회란 전시회에는 안 가본 데가 거의 없어요. 만약 바빠서 못 가면 화랑에 연락해서 도록이나 팸플릿이라도 보내달라고 해요. 그림을 모은 지 20~30년 가까이 되는데, 그런 것들이 결국 창의성에 대한 관심이라고 하겠죠.

>>광고 창작자들이 반드시 갖춰야할 조건은 무엇일까요?
광고를 평가하는 첫째 기준으로 저는 상품에 대한 이해를 가장 중요하게 꼽아요. 두 번째로는 아이디어가 나오게 된 이론적 배경이 중요해요. 저는 반짝이는 아이디어 그 자체는 별로 취급을 안 해요. 그 아이디어가 왜 나왔는지 하는 배경 지식이 중요한데, 어떤 책에서는 인사이트(insight) 라고 하더라고요.

>>그러니까 소비자 통찰력을 말씀하시는 거지요?
맞아요. 저는 직원들에게 머리에 염색하지 말고 마음의 염색을 들이라고 그래요. 생각이 트이고 마음이 트여야 되는데 머리에 염색하고 손가락에 물들인다고 광고인이 되는 것은 아니라는 이야기지요. 후배들이 격은 없고 멋만 들어있어 못마땅할 때가 많아요. 광고는 기본적으로 설득 커뮤니케이션이니까 격이 있어야지요. 멋으로는 잠시 거짓말 칠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멋만 가지고 어떻게 설득을 시키겠어요? 저는 광고에 격이 있나 없나를 봐요. 상품을 이해하지 못하고서는 절대로 격을 못 내요.

>>격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설명해주세요.
상품을 이해하지 못해도 멋을 낼 수는 있는데, 상품을 이해하지 못하면 격은 못내요. 우리 한복이나 한옥에대한 깊은 지식이 없이는 한국미의 격을 못 내지만 한복과 한옥에 대해 일반적인 이야기를 멋있게 할 수는 있어요. 앞으로 제 꿈이라면 광고주가 광고비를 아까워하지 않을 격 있는 광고를 만들고 싶어요. 그것이 광고인의 책무가 아니겠어요?

>>격 있는 광고가 창의적인 광고와 같은 맥락이신지요? 창의적인 광고에 대해 평소 어떻게 생각하셨어요?
창의성 개념이 자꾸 멋 쪽에 치우치는 데 문제가 있어요. 차별화를 위한 차별화, 이런 것은 잘못됐다고 생각해요. 창의성의 가장 기본은 인류가 가져야 될 기본적인 가치관에 있어요. 의사소통에 인류의 보편적인 가치가 없으면 안 된다고 봐요. 광고는 사기 치는 게 아니잖아요. 그리고 광고로 잘난 척 하지 말라는 겁니다. 반짝이는 것만이 아이디어라고 할수 없고, 연륜에서 우러나오는 중후함도 중요한 아이디어가 될 수 있어요
저는 광고에 격이 있나 없나를 봐요. 광고는 설득 커뮤니케이션이니까 격이 있어야지요. 후배들이 멋만 들어있는 경우가 많은데, 멋하고 설득하고는 전혀 관계가 없어요.상품을 이해하지 못해도 멋을 낼 수는 있는데, 격은 못내요.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해주시죠.
광고주의 성격이 다르고 제품이 다르고 소비자가 다르니까 각각 약간의 차이는 있겠지만 기본적으로 인류의 보편타당한 가치를 느끼도록 만들면 돼요. 크리에이터가 겪은 여러 가지 경험을 각고의 노력으로 풀어내면 분명히 좋은 광고물을 만들어 낼 수 있어요. 광고주가 목표로 하는 목적을 가장 많이 달성할 수 있는 것도 보편타당한 가치를 느끼도록 만드는 데서 가능하다고 봐요. 카피라이터와 디자이너들도 이런 연장선 위에서 고민해야 합니다.
그는 멋있는 광고보다 격(格) 있는 광고를 강조한다. 맛있는 광고나 멋있는 광고가 한번 볼 때는 매력적이지만 깊은 맛은 없는 광고라면, 격 있는 광고란 볼수록 감동이 커지고 오래오래 기억되는 그런 광고일 것이다. 김치로 비유하자면, 멋있는 광고가 막 담근 겉절이 맛이라면, 격 있는 광고란 묵은지나 동치미 국물에 가까울 터이다. 격 있는 광고의 저변에사람 냄새 나는 인류의 보편적 가치가 상품 메시지로 녹아있어야 가능한 일이다.

>>카피라이터와 디자이너의 관계를 어떻게 보세요?
저는 그 둘을 분리해서 보지 않고 얼마나 호흡이 맞느냐를 봐요. 둘 다 상품을 얼마나 잘 이해하느냐가 중요하니까 중첩되는 게 많으면 많을수록 좋은 광고가 나온다고 생각하거든요. 디자인이나 카피가 독특하고 기발하냐가 아니라, 상품에 대한 이해도를 최대한 높여서 목적 달성을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해요. 저는 창의적인 광고를 독특성(unique)에서 찾지 않아요. 즉석에서 대단한 느낌이 오는 광고도 있지만 50년 후에도 소비자들이 하는 광고도 있지 않겠어요? 전자는 나쁘고 후자는 좋다는 소리가 아니라 50년이나 100년 후에도 실망하지 않는 광고가 창의적인 광고라는 거죠.

>>사장님의 눈썰미가 보통이 아닙니다. 디자이너가 그린선이 약간만 흐트러져도 그냥 못 넘어갈 눈썰미신 것 같은데, 좋은 레이아웃이나 좋은 디자인은 어때야 한다고 보시는지요?
어떤 광고는 매체비가 아까울 정도로 초등학생이 그린 수준인 경우가 있어요. 어떤 보험광고는 그냥 보면 수치만 나오고 창의적이지도 않고 디자인 요소도 없다고 할텐데 자세히 보면 컬러의 균형이나 글자의 크기 같은 데서 나름대로의 수준이 있어요. 고수와 하수의 수준 말이에요. 디자인을 한마디로 정의하기는 어렵지만 가장 좋은 시안은 더 빼려고 해도 뺄 게 없고, 더 넣으려 해도 더 넣을 것도 없는 그런 것이라고 봐요. 만약 둘 중에 하나를 택하라면 저는 뺄셈의 디자인이라고 봐요. 함축이고 응집인 뺄셈의 디자인을 권하고 싶어요.

>>빼기의 미학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더 이상 뺄 게 없을 때까지 빼는 게 뺄셈의 디자인인데 그 기본은 인류의 보편타당한 격이 깔린 디자인이라고 봐요. 여백을 많이 살릴 수 있으면 일단은 차선이니까 자꾸 넣으려고 하면 안 돼요. 많이 넣어도 안 지저분한 사람이 고수이듯, 많이 빼도 안 비어 보이는 사람도 고수니까 그 둘이 양대 고수죠 . 함부로 빼면 하얗게 비어 공허해지고 함부로 넣으면 지저분해지잖아요? 그러니까 다 빼도 허전하지 않고많이 넣어도 안 저분해지는 그런 경지가 필요하지만, 지금은 원체 정보의 양이 많고 빨리 돌아가니까 시대적인 흐름에서 보면 광고에서 뺄셈의 디자인이 승부가 더 빨라요.

>>카피는 어떻게 보세요?
좋은 카피도 군더더기가 없어야죠. 카피라이터는 아니지만 제가 쓴다면 이렇게 씁니다. 광고 콘셉트가 나오면 먼저 그것을 100자로 쓰고, 그 다음날 50자로 줄이고 그 다음에 다시 똑같은 느낌으로 25자로 계속 줄여나가요. 그리고 광고에서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이 중용입니다. 저는 50을 제일 싫어해요. 만약 콘셉트가 분명하고 이론적 뒷받침이 있다면 광고 제작물 자체가 가장 낮은 평가를 받더라도 그런대로 의미는 있지만, 50점짜리는 의미가 없어요. 차라리 0점짜리는 그대로 의미가 있다니까요? 광고가 더하기가 아니라 빼기의 미학이라는 말은 새로운 정의라고는 할 수는 없다. 하지만 그는 많이 빼도 별 문제 없는 사람이 고수이듯, 많이 넣어 지저분해지지 않는 사람도 고수라고 불렀다. 넣고 빼는 문제가 그리 간단하진 않지만 정보의 과잉 시대이니만큼 그는 빼는 것이 효과적이라는 쪽에 서 있다. 일찍이 작가 마크 트웨인이 말했듯이, 성공한 작품은 그 안에 무엇이 담겨져 있느냐가 아니라 그 안에 무엇이 담겨져 있지 않느냐로 결정된다고 하겠다.

>>광고 창작자가 돼보고 싶다는 말씀을 하셨는데, 이런 광고를 만들고 싶다는 광고관이나 광고철학에 대한 말씀을 듣고 싶어요.
저는 젊은 사람들한테 제 영업 방법을 강조하고 싶어요. 너무 단세포적으로 영업을 하면 오래 가지를 못하니까요. 저는 인생이란 제로섬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에요. 좋은게 있으면 나쁜 게 있는데 잠시 착시현상으로 어떤 것이 더좋아 보인다는 거지요. 결국은 제로 아니겠어요? 세상은 생각보다 좁고 인생이란 새옹지마(塞翁之馬)인 경우가 많기 때문에 저는 늘 일관성 있게 영업을 해왔어요. 우리 집 가훈이 세 가지 있어요. 첫째, 게으른 건 죄다, 둘째, 남 욕하지 마라,셋째, 다 좋은 건 없다. 영업도 이렇게 해야 오래 가고 돈은 잃더라도 사람은 안 잃어요. 광고주하고 고회사의 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광고회사는 좋은 광고를 만드는 기본적인 책무를 해야 하지만 결국 사람하고 사람과의 관계니까 멋보다 격을 위주로 하면 효과는 좀 늦더라도 오래간다고 봐요. 제 영업 방법은 한 마디로 사람 냄새가 나는 영업이라고 할 수 있어요.

>>신자유주의가 한국에 들어온 이후 광고계도 많이 변했어요. 광고 그 자체가 좋아 밤이 새는 줄도 모르고 휴일 인줄도 모르고 일하던 풍토가 조금씩 바뀌고 있어요. 광고 전문인이라는 자부심보다 일반 월급쟁이로 생각 하는 풍토도 생기고요. 40대 후반이 되면 벌써 떠나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아요.
제가 일 때문에 1990년대 초반에 뉴욕 맨해튼에서 지냈던 적이 있어요. 그때 아담&크리스라는 광고회사에서 석 달 정도 있었는데, 처음에는 양로원인줄 알았다니까요? 그 회사의 평균연령이 그때 67세인가 68세인가 그랬어요. 나이키 같은 유수기업의 잡지광고 인쇄물을 받아서 하더라고요. 제 기능만 한다면 왜 연륜이나 나이가 마이너스 요인이 되는지 저는 이해가 안 가요. 애가 어른을 설득하는 것이 쉽겠어요, 동년배가 설득하는 게 쉽겠어요? 앞으로 두고 보세요. 실버마켓이 커지고 실버 광고인의 전성시대가 와요. 그러니까 앞으로 광고인들이 더 힘을 내고, 지금이라도 노력해서 자기 계발에 신경 쓴다면 분명히 새로운 파이가 따로 생겨요. 그런데 지금 우리 광고인들은 마흔만 넘어버리면 지레 겁먹고 자기 최면에 걸리는 것 같아 너무 안타까워요.
>>자신감이 없거나 조로하기 때문이겠죠.
어떤 예술가들은 정년 이후에도 좋은 작품을 만들지만 광고계에서는 그런 일이 드물어요. 카피 좋고 디자인 좋아서 상품 잘 팔면 되지, 나이가 무슨 상관이겠어요? 분명 나이 먹을수록 할 수 있는 블루오션(blue ocean)이 자기 안에 있는데 지레 겁먹고 안 하는 것 같아요. 본격적인 인생이 그때부터일 수 있는데 얼마나 아깝냐고요. 예를 들어, 실버 만큼 실버 마음을 이해하고 설득할 사람이 있겠어요? 초보가 실버카피를 쓸 수 있겠어요? 사람들이 그런 것을 간과하는 것이 너무 안타까워 죽겠어요.

>>그렇다면 평소 느끼시는 광고 창의성의 개념은 무엇인가요?
앞에서도 말씀드렸지만, 아무리 맛있고 멋있는 광고라도 거기에 사람 사는 이야기가 없으면 안 된다고 봅니다. 아무리 판매 기능이 있다고 하지만 결국 그게 사람 사는 이야기고, 사람 사는 이야기에서는 멋보다는 격과 깊이가 있는 광고가 좋다고 봐요. 저변의 끈끈함 같은 것이 있는 광고 말입니다. 그러니까 저는 광고 창의성을 사람냄새가 나는 격 있는 메시지라고 봐요. 제가 말씀드리는 광고의 격은 인류에기여할 수 있는 그 무엇입니다.

>>좀 허황되게 들리는데, 그깟 광고 한 편 가지고 너무 큰 이야기를 하시는 것 아닙니까?
그깟 광고 한 편이라니요? 광고의 공적 기능은 큰 이야기도 아니고 공익광고를 의미하지도 않아요. 상업 광고라도 사람과 사람 사이를 연결하고 인류의 보편적 가치관을 풍요롭게 살리는 메시지가 필요합니다. 광고는 문화적 기능도 하니까요. 좋은 상품 정보를 제공하는 광고의 고유기능에 격을 갖추게 되면 그 속에서 따뜻함이 생겨나요. 디지털 세상이 될수록 광고는 사람 냄새가 더 나야 합니다.

그는 오랫동안 지방광고를 위한 서사시를 주로 영업의 차원에서 써왔지만 앞으로는 크리에이티브의 맥락에서 써보고 싶어 한다. 이는 그의 한계이자 강점인데, 한계란 너무 늦은 나이에 신출내기 광고 창작자가 되려한다는 점이고, 강점이란 70세가 되든 100세가 되든 영원한 현역으로 보내려 한다는 점이다. 너무 빨리 은퇴하는 것이 광고인의 미덕처럼 간주되는 상황에서 그의 생각은 정말이지 푸르고 푸르다. 그가 생각하는 광고 창의성의 개념은 ‘사람 냄새가 나는 격있는 메시지’이다. 격(格)이란 무엇이겠는가. 인격이나 성격 또는 품격이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이 마땅한 분수나 품위가 꽉 차있는 상태가 아니겠는가. 어떤 기준에 꽉 차면 우리는 ‘합격’이라 말하고, 격을 넘어서는 새롭고 다른 격이 있으면 ‘파격’이라고 평가해오지 않았던가. 마치 넘칠 듯해도 결코 넘치지 않는 잔처럼 사람 냄새가 나는 격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멋있는 광고보다 한 수 위에 있는 격(格)의 세계인데, 그세계는 경험을 통해 아는 사람끼리만 느낄 수 있을 터이다. 앞으로 그는 인생의 또 다른 격을 찾아 시간 여행을 떠날 것이다. 사람들과 다붓다붓 어울리더라도 앞으로 광고 창작자로 자리매김하는 그 날까지 파격적으로 격물치지(格物致知)하기를 바란다. 이때 비로소, 그는 지방광고를 위한 서사 시를 마무리할 수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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