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 광고인이 제대로 인정받는 환경을 만들기 위해 뜨거운 가슴으로 20년 넘는 세월을 달려 온 서상열. 지방광고를 활성화 할 방법으로 그는 서울 광고회사와 지방 광고회사의 공동 작업을 제시한다. 서울 광고회사는 새로 개발된 광고 툴과 매체 정보를 공급하고, 지방 광고회사는 그것을 실제로 시뮬레이션 할 수 있는 자료를 제공하여 윈윈 전략을 구사하자는 것이다.
우리 광고는 모두 서울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다. 경제 활동의 중심이 서울이고 주요 광고회사나 광고주의 본사가 거의 모두 서울에 있기 때문에 자연스런 현상이겠지만, 지방에도 많은 소비자들이 있음을 생각하면 그동안 우리 광고계는 지방광고를 너무 소홀히 대접하였다. 서진기획을 전신으로 하는 대구 지역의 광고회사 에스엔디(S&D)의 서상열(1953~)대표는 평생 지방에서 광고 활동을 해오고 있다. 그는 잠시도 망설이지 않고 산드러진 어조로 지방광고에 대한 사랑을 내비쳤다. 고향이 대구인 관계로 지방에서 활동한다는 말만으로는 지방광고에 대한 그의 열정을 설명하기 어렵다. 그동안 우리 광고계는 지방광고에 대한 관심을 슬쩍슬쩍 내비쳤지만, 어디까지나 때가 되면 의례적으로 발언하는 동정적 말잔치가 아니었나 싶다.
>>지방광고 환경이 많이 열악하잖아요. 산업 구조나 영업 환경에 어떤 문제들이 있다고 보시는지요?
제 나름대로 포부를 갖고 지방광고의 꿈을 버리지 못하고 있지만 구조적인 문제가 제일 커요. 광고시장의 열악함과 시장의 부조리에 의한 인력 유출이 매우 심각하고, 지방에 본사를 둔 광고주가 거의 없어서 현장성 있는 광고를 하기 어려워요. 지방 광고의 70~80%가 분양광고고 나머지 광고주는 전부 중소형 가게라 광고회사라기보다 그냥 심부름센터라고 할 정도예요. 그리고 지방언론이 중앙언론에 비해 구독자 대비 매체비가 무지 비싸요. 지방 광고회사가 대행 수수료를 받기 시작한 지도 얼마 안 돼요. 예를 들어, 제일 기획은 매체비의 15%를 수수료로 받는데 지방에서는 그렇게 안 주는 거지요. 신문 광고비는 들쑥날쑥 해서 비빌 언덕이 없어요. 광고회사에 맡기면 광고비가 100원인데, 직거래는 85원이다보니, 직거래 하는 경우도 굉장히 많아요.
>>그럼 광고회사는 손가락 빨아요? 뭐 먹고 살죠?
크리에이티브 수수료를 받거나 전단 같은 거 만들어 먹고 사는 거죠. 다중의 소비자들이 정보를 실시간에 접하기가 쉽지 않은데, 지방은 입소문 같이 실시간에 접할 수 있는 정보량이 서울보다 많아요. 광고제작 스킬보다 오히려 입소문이나 원시적인 마케팅 기법이 더 잘 통하니까, 좋은 제작물을 만들기보다 신문에 기사를 더 낸다든지 사람을 한번 더 만나는 게 낫다는, 좀 후진적인 측면도 있어요.
>>광고보다 대인 마케팅이 더 효과적이란 말씀이네요.
전에는 광고인들이 아날로그 시대에 디지털적 생각을 가지고 튀어야 된다고 했는데 요새는 생각이 달라졌어요. 톡톡 튀는 아이디어보다 차라리 사람을 더 아는 것이 필요하니까 직원들한테 오히려 아날로그화 되라고 하죠. 좋은 툴이 많이 나오고 있지만 지방광고는 아직도 사람이 중요합니다. 서울에서는 시스템 속에서 일을 하지만 지방은 광고주의 입김이 절대적이고, 광고주들은 새로운 매체를 접하려는 마음가짐이 부족해요. 그렇게 길들여져 있으니, 지금 우리가 새로운 시도를 하기가 어렵습니다.
>>어떻게 해야 지방 광고회사에 바람직한 보상이 돌아갈 수 있을까요?
한때 광고를 중소기업 고유 업종으로 분류한 때가 있었습니다. 환경이 열악하고 자연적으로는 개선이 힘드니, 제도적으로 키워야 합니다. 지금 환경에서는 지방광고가 살아남기가 불가능해요. 1년 최급고가 10억 원인데 광고주가 60개 이상인 광고회사가 있어요. 뚝배기 집 10개, 불고기집 50개, 이런 식으로 5만 원짜리 광고주도 있습니다. 제가 지자체 장들하고도 상의하는데, 법적 조치는 힘들겠지만 조례를 정해서라도 지자체에서 하는 사업에 지방 광고회사를 컨소시엄으로 참여시키거나 일부 쿼터를 주는 제도적 배려가 필요해요. 광고 관련 단체나 학회의 학자들도 지방 광고회사나 광고주를 분석해 볼 필요가 있어요. 알고 보면 그 규모가 상상을 초월할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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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진기획 시절 지방 대학생을 대상으로 개최한 '서진기획 대학생 광고대상' 포스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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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대구에 지역 광고회사한테 우선권을 주는 광고주들이 생기기 시작했어요. 지방 광고업계에는 희소식이죠. 결국 지방광고는 지방을 아는 사람, 지방을 아는 광고, 지방 소비자를 아는 광고회사가 유리하다는 것이 검증된 거니까요.
>>문제 제기가 필요하다는 말씀이시죠?
당연하지요. 지방에서 독야청청 해보려 하지만 지금은 재원도 없고 인력도 없어 힘든 상태입니다. 그래도 회사가 잘되면 언젠가는 한번 해 볼 겁니다. 참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비수기 때는 직원들이 컴퓨터 앞에 앉아 담배만 피우고 제때 봉급도 못 받는 광고회사가 많아요. 해보고 문 닫는 악순환이 계속되니, 광고회사 존속 기간이 채 3년이 안됩니다. 전체광고를 100으로 본다면 지방광고의 외형이 3이나 5인데 종사하는 사람들은 30~40%나 돼요. 이 많은 사람들이 종사하는 영역에 대한 관심도 광고 전문가의 책무인 거죠. 한창 잘 나가던 1997년 무렵 그가 운영하던 서진기획은 3백억 원이 넘는 취급고로 우리나라 독립광고회사 중 전국 2위를 한 적도 있다. 그것이 결국 서진기획 도산의 불씨가 되었지만, 중앙에 버금가는 광고회사를 만들려는 희망은 아직도 창창하다. 취급고가 10억 원인데 광고주가 60개 이상인 광고회사를 한 번 상상해보라. 몇 명 안 되는 직원들이 발바닥에 땀나도록 뛰어도 광고주에게 만족스러운 서비스를 제공하지 못할 것이다. 열악한 지방광고를 활성화할 방안으로 그는 중앙 광고회사와 지방 광고회사가 윈윈 전략을 모색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현장에 대한 여건은 현장에 있는 지방 광고회사와 광고인들이 더 잘 알기 때문에 무조건 지방을 배제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는 서로 간에 공통의 영역을 찾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결국 양쪽에 큰 도움을 주리라고 전망하였다.
>>신문 삽지나 카탈로그 외에 비집고 들어갈 구석이 있을 것 같은데 쉽지 않은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요?
일단 광고주가 여러 광고회사와 다중으로 거래하는 것 자체를 업무 편의상 싫어해요. 일관성 없고 귀찮잖아요. 광고회사가 PT라는 제도적 장치를 통해 협력업체로 지정되지 않으면 참여할 수 없어요. 광고주가 하나는 알고 둘은 모르는 것이에요. 지방 사람보다 그 지방의 특성을 더 잘 아는 사람이 있겠어요? 최근 대구에 지역 광고회사한테 우선권을주는 광고주들이 생기기 시작했는데 지방 광고업계에는 희소식입니다. 결국 지방광고는 지방을 아는 사람, 지방을 알고, 지방 소비자를 아는 광고회사가 유리하다는 것이 검증되었으니까 앞으로 이런 사례가 더 늘어날 것입니다. 윈윈 모델이 뭐냐면 서울의 광고회사에서는 새롭게 개발된 광고 툴이나 매체 정보를 공급해주고, 지방에서는 그것을 실제로 시뮬레이션 할 수 있는 자료를 제공하여 실질적인 결과물을 만들어 같이 호흡하는 과정이지요. 중앙과 지방 광고회사가 공동으로 일하는 양을 늘릴 필요가 있어요.
>>인식의 차이를 좁히는 것이 가장 중요한 관건인데요.
광고 물량을 빼앗아 갔다거나 빼앗겼다는 식으로 보지 말고 상품에 대한 이해를 공동으로 높여서 그 열매를 같이 따먹자는 말인데, 이것이 앞으로 해야 할 과제입니다. 이제 지방에도 고급 인력이 꽤 많고 실시간으로 광고 정보를 공유하니까 능력들이 만만치 않아요. 예를 들어, ‘해피하제’라는 1조4천억 원짜리 두산 위브 더 제니스 프로젝트는 오리콤하고 우리하고 호흡을 맞춘 겁니다. 오리콤에서 매체 운용을 맡고 우리는 제작에서부터 전체를 총괄했지요. 이제 지방광고를 활성화시켜 서울과 어깨를 나란히 할 필요가 있어요. 떳떳하게 지방 광고인이라고 말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제 목표의 99%입니다. 나머지 1%는 개인적인 것이고요.
>>서진기획 시절 지방 대학생들에게 기회를 주는 차원에서 대학생 광고대상을 개최하는, 당시로서는 대단한 시도를 하셨는데, 어떤 추억이 있으신지요?
대학생 광고대상은 1994년에 1회를 시작으로 매년 해오다가 1998년 IMF 파고를 못 넘고 회사가 도산하는 바람에 4회에 그친 것이 제일 안타깝습니다. 그래도 전국에서 가장 많은 학생들이 응모했다는 점에 자부심을 느끼는데, 당시 어린 마음에 알량한 자존심은 있어가지고 상금도 제일기획이나 중앙광고대상하고 똑같은 액수로 했어요. 내가 해야 될 것 중 하나인데 못해서 가장 응어리져 있는 부분이고,굉장히 안타깝게 생각합니다. 특히 지방 광고학과에서 공부하고 있는 학생들한테 미안해요. 제 책무로 생각하고 어떤 식으로든지 노력해서 계속 해보고 싶습니다.
>>전국 각 지역 광고회사 사장님들이 연합해서 다시 만들면 방법이 있을 것도 같은데요. 이를테면 각 지역 광고 회사가 참여해서 ‘로컬 애드리그(local ad league)’같은 것을 만들면 되지 않겠어요?
그거 참 좋은 생각이네요. 만약 그런 뜻있는 사람들이 있다면 제 기득권을 포기하더라도, 다시 말해서 광고대상의 명칭을 바꾸더라도 지방의 대학생 광고대상을 다시 시작하고 싶습니다. 당시에 하도 양이 많아 심사를 보름씩 하고, 대우 대구지사 컨벤션 홀을 빌려 거창한 시상식을 했었어요. 지금으로선 꿈같은 이야기인데 대학생들에게 다시 꼭 해주고 싶어요. 그에게 ‘서진기획 대학생 광고대상’의 의미는 남다르다. 지방의 광고전공 대학생들에게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던 1994년에 벌써 지방대 학생들만을 대상으로 논문 부문과 작품 부문으로 나눈 공모전을 개최했던 것이다. 1회에서 3회까지의 포스터에 나타나듯이, 응모 대상을 전문대를 포함한 지방소재 대학생 및 대학원생으로 명시함으로써 서울 지역 재학생들을 배제할 것임을 분명히 하였다. 보기에 따라서 역차별이라고 할 수도 있겠으나, 당시 서울을 중심으로 하는 다른 공모전들도 있었으니 지방 대학생에게 기회를 주려는 배려로 해석하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상금도 당시 제일기획 공모전의 상금과 같은 액수를 책정했는데, 여기에서도 지방광고에 대한 그만의 고집과 자존심의 한 단면을 읽을 수 있다.
>>사업하는 분들은 돈 버는 데 정신이 없고 공부만 한 사람들은 현실 감각이 둔한데, 뒤늦게 공부해서 광고학 박사까지 받으셨어요.
자격지심에서 시작했어요. 제가 대구에서 굉장한 부잣집 아들로 태어났는데, 공대 나와서 광고를 하니까 다들 재력으로만 하는 줄 알아요. 전국에서 몇 번째 가던 서진기획 할 때도 다들 전문인으로 안 봐요. 그래서 사장으로서 광고 이론은 알아야 되겠다 싶어 석·박사 9년을 개근으로 다녔어요. 공부하기를 잘 했다 싶어요. 이 나이에 솔선수범한 것이 소문났는지 지역에 광고인 만학도가 많이 생겼어요. 제가 광고업계에 기여할 학문적 능력이 부족한데도 특강을 해보면 후배들이 많이 신뢰해요.
>>광고물은 어떤 기준으로 평가하세요? 지방광고의 크리에이티브 맥락에서 알고 싶어요.
제가 굉장히 독선적이거든요. 크리에이터들은 제가 전문성이 없다고 보겠지만 저는 비주얼도 그렇고 이론도 그렇고 “내가 너보다 낫지 않나?” 하는 알량한 독선이 있어요. 반성도 하지만, 솔직히 제가 광고를 오래 했고 그림도 그렸고 해서 제 눈이 밝다고 생각하는데 직원들도 인정하는 면이 많아요. 지금 능력 있는 후배만 있다면 회사를 물려주고 싶어요. 저는 큰 영업만 하고요. 제가 경영에 얽매여가지고 이제 뭐하겠어요? 돈 벌려고 광고한 게 아니었으니까, 이제 제 고유 업무로 가고 싶어요.
>>고유 업무란 무엇을 말씀하시는지요?
크리에이터 일을 하고 싶어요. 고등학교 3학년 때까지 미술을 했었고 미대를 가려고 했어요. 지금도 미술에 관심이 많아 광고이론 책보다 디자인 책을 더 많이 봐요. 제가 진짜로 하고 싶은 것은 아이디어 발상이나 크리에이티브 인데 매일 영업이나 관리만 하고 있으니까 안타까워요. 지금 심정으로는 사장을 공모하고 싶습니다. 남의 집에서 녹을 먹기보다 작은 회사지만 사장이 되어 큰 광고회사로 만들어 꿈을 펴보고 싶은 사람, 사장이 되어 광고회사 경영자로서 출세하고 싶은 사람 있으면 언제든지 맡겨줄 수 있어요. 역할을 바꾸고 저는 제가 하고 싶은 쪽으로 돌아가고 싶어요.
>>말씀은 쉽지만 광고 창작자가 그냥 꿈만으로 되지 않는데, 단지 과거에 그림을 좋아했었다는 것만으로 가능하다고 생각하세요?
믿지 않겠지만, 저는 잠재력이 있다고 생각해요. 전에는 아이디어 발상도 하고 그랬는데 서진기획 망하고 나서는 영업에 매달리느라 못했어요. 직접 비주얼도 그리고 때로는 카피도 쓰고 그랬어요. 여기에 이르러 서상열의 색다른 면모를 보게 된다. 그는 지방 광고인이 제대로 인정받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99%의 목표라고 하였는데, 다시 말해서 20여 년 넘게 지방광고를 해오면서 내린 나름대로의 결산 보고서이리라. 이는 곧 그가 혼자만의 비망록으로 지방광고를 위한 서사시를 뜨거운 가슴 으로 써왔다는 방증일 터이다. 나머지 1%는 개인적 희망인 광고 창작자 몫으로 남겨두었다. 도대체 광고 창의성이 무엇이길래, 사람들은 이토록 광고 창작자가 되고 싶다는 꿈을 버리지 못하는 것일까. 지방광고의 활성화와 관련하여 그가 말한 내용의 상당 부분도 광고 창의성에 관련된 주제들이었다. 자신의 뜻과 상관없이 태어나보니 부잣집 아들로 되어있는 것을 “우예 하겠노?” 라고 반문하는 그는, 정녕 마음은 부유하되 생활은 부유하지 않은 사람들과 섞이기를 즐겼다. 그런 마음으로 이제 그는 인생의 후반기 풍경화를 그리려고 한다. 언뜻언뜻 스쳐가는 허허로운 표정은 광고 영업의 덧없음을 슬쩍슬쩍 내비친 것일 터. 아직 한창 때인데도 젊은 후임자에게 다 맡기고 사장의 일상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창작의 세계를 거닐고 싶다는 그에게서 어느 광고인의 내면의 틈새를 본다. 정직하고 신선한 커피를 만들어 손님에게 기쁨을 주는 바리스타처럼, 그 역시 스스로를 신선하게 만들어 누군가에게 향기롭게 다가가고 싶었으리라.